한국 학자들의 고질적인 병 중의 하나는 남의 논문이나 책을 읽지 않고 -정말로 읽지 않는 지는 모르겠지만- 읽어도 논평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더지 제 굴 파기라는 비난을 공연히 듣는 것은 아니다.
독일 관념론을 전공하고 철학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중견 철학자 권기환 선생은 지난 주 <철학은 반란이다> 북토크 행사에서 사회를 맡았고, 이번에는 본격적인 서평을 써 주었다. 저자로서 이런 서평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내 책의 기본 논조와 정신을 잘 기술해주었다.
"지난 7월 5일 토요일 북 토크가 서울의 모처에 있었다. 이 북 토크는 요즘 독립 철학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이종철 교수님의 네 번째 저술인 『철학은 반란이다!』의 출판을 기념하고 책의 내용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려는 시도에서 기획되었다. 필자는 이 북 토크에 사회를 맡았는데, 필자의 느낌은 한국에서 철학이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임에도 지정 토론자들 및 참석들과도 소통의 시간을 가진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하겠다. 특히 지정 토론자로 선정된 야규 마코토 교수님이 한국 철학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본 것은 필자로서도 동북아에서 한국-중국-일본의 지속 가능한 사상적 틀을 공유하면서 한국 철학의 새로운 지평, 즉 한국 철학에서 현실적 대응 논리를 다시 발견해야 할 충분한 까닭임을 새삼 느끼게 했다. 한국 철학의 가능성은 한국만의 고유한 철학 사상에 머물러 있거나, 서양 철학의 잣대로 한국의 고유한 철학을 재단하거나 평가하는 것으로 나아가서 안 된다.
이 책의 제목 위에 비판과 철학의 정신, 논쟁이 없는 한국 철학계에 경종을 울린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문구에 절절하게 이 책은 저자의 가치 없는 비판의 화살이 마치 반란과 같은 목소리로 가득하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가 한국과 한국인 비판이고, 제2부가 해석과 비판이며, 제3부가 철학과 사상 비판이다. 누구든 철학의 반란이든 아니면 반란의 철학이든 관심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책에 다가간다면 철학이 사변의 공허한 목소리가 아니라 일상과 경험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이러한 작업은 흔하지 않다. 한국에서 철학이라고 하면 그저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자가 스스로조차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추상적 개념들과 누가 이렇게 말했다는 방식으로 강의하면,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교수자의 말은 듣는 것이 솔직히 전부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러한 광경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바로 이 책은 지금 여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철학의 단상에 대해 가히 반란이라고 할 정도로 예리한 비판을 보여준다. 그렇다! 비판과 논쟁이 사라진 한국 철학계에 대한 반란 선언은 그 누군가 수행해야 하지만, 사실 모두가 소극적이었지만, 이제 이 책이 그 깃발을 들어 올린 것이다.
한국 철학계는 냉정히 말해 비판과 논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문제 제기나 질문 자체에 대해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철학적 사유가 빈약하고 새로운 해석이나 이론을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소화해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음을 뜻한다. 철학이 한국적 현실에 대응 논리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것도, 스스로 사유하지 못하고 그저 수동적으로 전통에만 얽매여 고착화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학계의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모두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아직도 한국에서 철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방법과 함께 치열한 현실에 대응 논리가 무엇인지라는 현실적 문제 앞에 그대로 막혀버린 것이다. 어쩌면 이번 책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치열한 고민에 따른 결과물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철학이 비판뿐만 아니라 사유의 반란으로 망치를 들고 마치 광야를 떠도는 자유로운 초인처럼 독립 철학자로서 저자는 비판의 칼날을 실명 비판을 통해 수행한다. 설령 그 비판에 대한 비판이 있을지라도,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용기와 열린 태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이든 이 책의 동반자가 될 수 있으리라.
▲ 이종철 박사의 저서 표지. ©브레이크뉴스
철학은 어떤 비판과 반란의 정신인가? 이 책은 어쩌면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어느 정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비판 정신에서 출발하고 그 때문에 때론 시대를 거슬러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철학은 이와 달리 교조적 독단주의와 시대와 동떨어져 대중과 괴리된 채 각자의 독백만을 형성하고 있을 뿐이다. 비판이 없는 독단주의와 대화와 토론 없는 독백이 철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데에는 한국의 철학계가 현실에 안주하면서도 현실에서부터 동떨어진 추상적 언어와 개념의 유희에만 빠져있을 뿐이지 않았던가! 기이한 것은 스스로 사유조차 못하는 주체가 마치 철학을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하거나 혹은 자신의 철학도 아닌 이론이나 학설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이제 기존의 형태를 벗어나 에세이 철학으로 일상에서 철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에 대한 자기비판에서 출발하는 것은 분명하다. 더 나아가 한국인의 사유에서 드러나는 여러 단상도 냉정하게 비판적으로 고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이 사유에서 출발하는 한, 한국철학도 한국인의 사유 방식에 대한 비판은 어쩌면 필수적이다. 이것은 단지 한국인에 대한 자기 비하를 옹호하자는 뜻이 전혀 아니라, 한국인의 사유 방식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통해, 이를 감내하지 않으면 한 걸음조차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제시했다고 하겠다.
철학이 반란이 되기 위해서는 철학을 비판의 무기로 무장할 수 있는 전사가 필요하다. 전사는 비판의 대상에 대해 가치 없이 칼을 휘둘러야 한다. 그러나 철학에서 전사의 칼은 날카롭고 예리하되 마구잡이어서는 안 되고 정확하고 치밀한 논리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에서 철학은 전사에게 비판의 칼이 무디어져서 마치 녹슨 칼이 칼집 속에 그저 보관되어 있거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에는 가치 없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이나 자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에 향해 있는 비판에는 너무도 쉽게 비판의 칼을 쉽게 거둔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정당하면서 타당한 비판이라면 그 누구라도 기꺼이 비판이 누구를 위한 비판이든 누구의 비판이든 열린 태도로 수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전사의 칼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철학사는 수많은 논쟁과 비판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반란의 역사이다. 처음에는 기존의 낡은 것들에 대한 가치 없는 비판과 논쟁에서부터 무너뜨리는 반란으로까지 이었다. 물론 철학에서 반란은 성공 여부 자체가 중요하기보다 이와 상관없이 펼쳐지는 논리와 해석이 더 중요할 것이다. 더욱이 철학은 반란이 성공했더라도 다시 비판과 논쟁이 끊임없이 전개된다. 반란이 실패했더라도, 비판의 정신과 논리가 살아 있는 한, 언제든 다시 또 다른 반란을 준비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양상은 천편일률적으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별로 복합적이고 다양하게 출현한다.
필자는 한국에서 철학이 아직 새로운 가능성에 비해, 철학을 통해 한국의 현실에 대응하는 치밀한 논리가 매우 부족함을 느낀다. 분명한 것은 그와 같은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되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철학은 추상적 담론에만 머물러 있는 공허한 이론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 까닭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로서 철학하기를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찾고 문제 해결을 위한 치열한 논쟁과 논리 그리고 비판에 근거할 때 성취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보면 한국의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서 이에 대응하는 논리를 한국 철학에서 각자가 새롭게 발견하거나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철학은 반란이다!』라는 이 작은 책이 한국에서 철학에 대한 비판이 소진되어 갈피를 못 잡는 상황에서 하나의 반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반석 위에 한국에서 철학의 새로운 지평이 현실성과 가능성의 종합에 따라 한국에 적합한 논리와 논쟁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그와 같은 지평은 이 작은 책이 반란의 불길을 일으키고, 비판의 칼날을 멈추지 않는 한에서 철학이 이제는 한국인의 일상과 삶에 침투할 때, 멈추지 않는 비판과 논쟁이 사유의 치열한 반란에 서곡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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