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이 탄생하기까지

한국 대중가요계는 어떻게 명곡의 전당이 되는가

by 하기

명곡이 탄생하기까지

한국 대중가요계는 어떻게 명곡의 전당이 되는가


한국의 대중가요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출발한다. 그 출발점에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희망가가 있다. 민요 풍의 이 가요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중가요로 추정된다. 그 이전에도 노래는 있었지만 악보와 앨범의 형식을 갖추고 미디어의 도움으로 발간되는 대중가요의 형식을 띠고 나타난 최초의 노래로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1926년에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는 대중가요 역사에서 첫 번째로 히트곡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처녀와 유부남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성악가가 연인과 함께 현해탄에 빠져 죽는 실제 사건은 이 노래와 함께 식민지하 조선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스캔들이 되었다. 죽기 전에 일본에서 직접 녹음한 이 노래를 듣기 위하여 축음기를 하나씩 구입하여 마을회관에 비치하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이어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노래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생했다는 시대적 배경으로 우리 가요는 일본의 국민가요인 엔카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다. 엔카는 한국에 와서 형식적 특성을 보존하고 한국적 민요의 정서를 수혈받아 트로트라는 형식으로 진화한다. 광복이 되기까지 트로트는 대중가요로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등이 유명했고 이런 가요들은 레코드 전문회사에서 음반의 형태로 발매되어 유통되는 형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간다. 대중들은 축음기에 음반을 돌리는 방식으로 음악을 감상하고 축음기가 없는 대중들은 축음기가 있는 다방이나 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을 듣는 방식으로 대중가요를 소비하게 된다. 이런 형식은 광복 후에도 상당한 기간 유행되는 음악 감상 방식이었다.


광복이 되면서 한국 대중가요는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6.25를 겪으면서 미군이 상주하게 되고 그들의 음악도 한국에 상주하게 되었다. 미 8군 무대를 중심으로 블루스와 로큰롤 등 영미 대중가요가 흘러나오게 되고 그 음악을 소비하던 대중들은 다시 유사한 음악을 생산해내게 되어 미 8 군무대에서 가수로 데뷔하는 형식으로 가수의 길을 가는 뮤지션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 중심에 신중현이 있다. 신중현과 엽전들이라는 록밴드를 이끌던 그는 미인, 커피 한잔 등 한국적 록을 만들어내며 트롯 일변도였던 대중가요의 변화를 이끄는 선두주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때마침 영국에서 성공한 록밴드 비틀스가 미국에 상륙하면서 로큰롤의 전설을 써 내려가고 이 음악들은 전 세계로 전파된다. 한국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수들은 이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한국적인 록밴드의 시도가 본격화된다. 라디오 방송에서도 팝 음악을 소개하며 영미 대중가요의 소비는 더욱더 촉진되어 트롯 위주의 한국 가요의 입지가 약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트로트는 전통가요라고 명명될 정도로 그 뿌리가 단단했다. 이미자, 남진, 나훈아, 하춘화 등 걸출한 스타의 발굴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명곡을 선물하였고 배호, 차중락, 최희준 등 새로운 스타의 등장으로 트롯 음악도 대중가요의 한편을 든든히 지키며 한국 대중가요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1970년 대 이후 비약적인 발전과 무수한 명곡의 탄생을.


https://www.youtube.com/watch?v=nyGW5cm_rW8


https://www.youtube.com/watch?v=nTEaztgefWE


https://www.youtube.com/watch?v=u507Ng30f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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