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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버프 Feb 22. 2023

네 멋대로 해라 | 영화에 대한 영화


작가주의라는 표현은 1954년 프랑수아 트뤼포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누벨바그 운동의 본거지인 까이에 드 시네마 잡지에 묘사된 영화 비평의 경향 중 하나였는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감독의 개성이 담긴 예술 작품로 보는 것이다. 작가주의 비평은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의 비교적 정형화된 영화 만들기 방식에 대비되는 영화 만들기를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이었고 알프레드 히치콕, 존 포드와 같이 현재 미국의 거장 감독으로 불리는 감독들이 작가주의 비평을 통해 고유의 스타일과 미학적 관점을 인정받게 되었다.

누벨바그라는 영화 운동은 주제적, 기술적 혁신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영화사적 지위를 가지는데, 각 감독마다 각자 추구하는 영화적 목표는 달랐다. 장 뤽 고다르라는 영화 작가의 작품 경향을 이해하는 데에는 ‘정치적 급진주의’가 중요하다. 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헨드헬드 카메라로 파리 시내를 촬영해 ‘거리에서 찍은 영화’라는 전설로 유명한 고다르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는 그 제작 방식부터 특유의 정신을 담고 있다. 정치적 급진주의라는 그의 영화세계를 드러내는 수식어가 영화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 형식에 적용된다. 고다르는 네 멋대로 해라가 선언문이라 말한다. 영화에 대한 담론을 위해 영화를 만든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형식적 실험들 때문이다. 형식의 파격을 통해 익숙한 내용을 낯설게 만든 것이다. 대중문화 속의 익숙한 이미지를 끌고 들어와 신선하게 만드는 팝아트의 형식적 과감함처럼 말이다. 형식적 파격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낯섦은 여러 층위에서 존재한다. 먼저 점프컷과 연속성을 깨는 편집은 관객을 가만 두지 않는다. 소리는 현재진행형인 시간 속에 있는데, 공간은 그와 상관없이 편집되어 나열된다. 따라서 관객의 머릿속에서 충 시공간의 감각을 깨지며 충돌이 일어나고 편안한 몰입이 방해된다. 관객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영화임을 자각하게 되고 그러한 불편함이 영화를 새로운 형태의 자극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형식적 실험들이 내러티브와 어떻게 붙어 있는걸까? 아녜스 바르다는 점프컷에 대해 ‘파편화되고 인과적으로 엮이지 않는 병렬적인 현대인의 삶을 드러내는 장치’라는 말을 남겼다. 필자는 영화를 본 후 가장 먼저 자유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형식적 야심(혹은 자유로움)만큼이나 여러 갈래를 펼친 이야기 때문이었다.

 먼저 험프리 보가트와 미셸, 파트리샤까지 이어지는 입술을 만지는 제스쳐를 통해 할리우드 누아르 영화의 어떤 부분이 기저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도망 다니는 범죄자가 사랑을 쫒다 죽는다는 전형적인 이야기 얼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들은 낡아 있지 않다. 험프리 보가트는 할리우드 고전기의 누아르 영화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이해해보자. 미셸은 험프리 보가트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의 스크린 페르소나를 현실로 끌어낸다. 험프리 보가트의 영화 속 범죄의 세계를 현실의 프랑스로 끌어들인 미셸의 직관적 행동 양식은 예상 불가능하다. 그에게서 살인 후 죄책감이나 잡히는 것에 대한 불안은 보이지 않는다. 닥친 것을 해결해 나가는 충동적인 삶의 방식에서는 단순하게 주어진 상황을 ‘살아나가는’ 모습만 보인다. 그는 도덕, 법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자유를 누린다.

미셸과 파트리샤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남녀의 사랑과 소통의 불완전성이라는 주제를 끌고 들어온다. 파트리샤는 일반적인 누아르 영화의 팜므파탈, 남자를 유혹하고 파멸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했을지도 모른다.”라 말하며 관계의 종결을 말하는 주체로 기능한다. “자유롭지 못해서 불행한 건지, 불행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건지 모르겠어요”라는 파트리샤의 말은 자유롭지 못하고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드러낸다. 결국 그녀는 미셸을 밀고하고 그와의 이별을 통해 자유로워진다. 마지막에 카메라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만지는 그녀는 관객에게 자유로워진 자신, 미셸이 지녔던 험프리 보가트의 정신을 이어받은 자신을 선언한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미국인 파트리샤가 할리우드식 문화에 심취한 프랑스인 미셸을 밀고한다는 점에서 전후 미국 문화의 지배 묘사로 읽히기도 한다. 네 멋대로 해라는 할리우드에 대한 고다르의 코멘트, 또는 장르 영화 언어에 대한 도전으로 보인다. 그 도전 정신이 지금까지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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