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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버프 Feb 22. 2023

더 랍스터 | 블랙코미디의 은밀한 매력


요로고스 란티모스의 첫 영어 영화로 그가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작품인 '더 랍스터'는 두 가지 이야기 아이디어가 합쳐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우화적 어법을 사용해 현실의 극단적 버전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사랑의 생존 불가능성을 풍자하는 이야기로, 공간은 도시, 숲, 호텔 세가지로 나누어진다. 도시와 호텔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로 '커플주의'고 숲은 '솔로주의'다. 호텔에서는 나약한 인간의 최후인 동물이 되기 싫어 짝을 만들고 숲에서는 몸의 일부가 변형되는 끔찍한 벌을 받기 싫어 각자 음악을 들으며 따로 춤춘다. ‘사랑’은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 란티모스 감독은 뚜렷하게 각인되는 세 공간부터 무표정의 배우들이 대사를 처리하는 방식까지 블랙코미디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려 어이없는 세계를 창조하고 설득시킨다. 배우들의 무표정처럼, 세계에 대한 논리를 기다리는 관객에 시치미 뚝 떼고 설명을 하지 않는 영화의 담력에서 이 매력적인 긴장감이 기인한다. 우리가 익숙한 공간에 익숙해지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놓여있는 이 세계는 현실과 허구 사이의 회색 지대 속에 놓여 우리를 낯설고 건조한 판타지를 통해 현실의 뚜렷한 본질에 도달하게 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기 보단 이 건조하고 날선 코미디의 리듬을 받아들이며 낄낄대면 된다. 그 속에선 한 가지 방식이 옳다 강요하는 원리주의적 태도의 폭력성이 조롱 당하고 짝을 찾으라고 할 때는 찾기 싫고 짝을 찾지 말라고 할 때는 찾게 되는 청개구리 인간에게 비웃음이 날라온다.

두번째 이야기 줄기는 공통점을 찾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공통점이 있어야 사랑이 가능하다는 전제, 혹은 진짜로 그런지 묻는 질문을 품고 있다. 호텔에서는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가짜 코피를 만들고 소시오패스 연기를 한다. 하지만 호텔을 떠나 숲에 나가자 마자 근시 여자를 찾아 사랑을 하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일어난다. 호텔에는 근시 여자가 없었을까 아니면 그냥 찾기 싫었던 걸까. 실제로 근시가 그에게 커플이 되기 위해 필요했던 바로 그 공통점이었던 걸까. 아니면 호텔이라는 체제를 빠져나오고 생긴 구멍에 우연히 크기가 맞는 마개를 찾은 걸까. 근시라는 공통점으로 시작되어서 토끼 나눠주기, 같은 음악 싱크 맞춰 듣기, 그리고 둘 만의 언어 개발로 이어지는 ‘사랑'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 틈바구니로 다시 쫒겨난다.


사랑이 생존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커플로 존재 가능한 도시로 쫒겨나는 게 다행이라고 하기 무색하게 여자는 장님이다. 즉, 둘의 근시라는 공통점은 더 이상 없다. 사라진 공통점을 어떻게든 매우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면서도 영화의 관점에 의문이 생긴다. 공통점이 사랑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면 그들의 사랑은 이제 끝난 걸까. 둘만의 언어도 개발했는데?  새로운 상황에 맞추어 말로 설명한 행동 언어로 완벽하게 공유된 ‘장님되기’ 계획을 실행하러 들른 레스토랑에서 그는 눈을 찌르기 전에 주저한다. 눈을 찔러 또다시 공통점을 만들고 커플이 되는, 호텔에서 그가 사용했던 ‘억지로 공통점 만들기’ 방식이 이번에는 먹힐 수 있을까? 소시오패스 연기, 때려서 코피내기와 다르게 비가역적인 행위기에 이번에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걸까? 영화는 명커ㅐ한 설명 없이 단호하게 끝나버리지만 ‘장님 커플 백년해로’든 ‘도망친 남자와 버려진 장님여자’든 두 사랑이야기 모두 잔인하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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