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매매글 아침 미팅 2일째였다.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눌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사망 판정이었다. 이 증상은 메인기판이 완전히 날라 갔을 때 나타난다. 수리 불가능에, 메인기판 교체 비용은 그냥 노트북을 새로 하나 사는 것이 나을 가격이다. 자동차로 치면 엔진이 아작난 것과 같다.
비용보다 더 문제인 것은 데이터의 백업이었다. 저장 매체는 살아 있을 테니, 통째로 백업을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비용도 결코 만만치 않다. 저장 매체의 분리 교체가 수월한 구형 노트북의 경우는, 저장매체(HDD,SSD)만 분리해서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다. 하지만 신형 노트북, 특히 휴대성이 극대화된 경량 노트북의 경우에는 메인기판과 저장매체가 일체화 되어 있다. 처음 구매할 때 선택한 저장매체의 용량을, 나중에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 휴대성을 위해 정비성을 포기한 경우다.
매매글 아침 미팅에는 참가해야 했다. 시간이 30-40분이 남아 있었다. 내가 선택한 첫번째 방법은 전에 쓰던 노트북을 찾아 세팅하는 것이었다. 노트북을 찾아 전원 버튼을 눌렀다. 전원이 들어왔다. ‘오케이, 좋아, 된다’ 그런데 패스워드를 입력하니 백(white) 스크린이 떳다. ‘하!’ 이건 저장매체가 사망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전원이 들어가지 않는 증상이 심장 정지라면, 이 상태는 뇌사에 해당된다. 심장은 뛰는데, 아무런 기억을 불러올 수 없다.
두번째로 구형 데스크탑PC를 찾아 켰는데, 다행히 윈도우 화면까지 나왔다. 그런데 너무 느리다. 줌 미팅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였다. 생산된 지 8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너무 느리다.
휴대폰을 이용해 매매글 미팅을 마치고, 애플 샵에 정식으로 수리 예약을 넣었다. 데이터백업에 고민을 하며, 수리할 때 같이 가져갈 아답터를 챙겨 연결하고 마지막으로 전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전원 버튼을 눌렀다. 맥북 특유의 음과 함께 부팅이 되었다. ‘???’ 배터리 방전을 메인기판 사망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나는 분명히 전원을 연결하고 잤는데, 그게 빠져 있었나 보다. 그리고 밤새 노트북은 자동 업데이트 기능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모든 전기 에너지를 소진했었나 보다.
노트북은 살았다. 나도 살았다.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자 마자, 바로 타임머쉰(백업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켜 모든 데이터를 백업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 백업하도록 설정을 변경해 두었다. 그리고 클라우드 공간 이용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노트북은 살아있다. 앞으로 오래오래 살기를 희망한다. “노트북, 너의 사망을 나는 허락치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