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2주 살기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제주도에 갔었다. 그때 한라산도 등반했다. 2주 살기에 선정되어 모인 멤버들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그룹들 중 가장 강렬하고 다양한 구성이었다.
제주도 2주 살기 프로그램의 꽃은 “15분 자기 소개”였다. 본인이 누구인가를, 다들 개성있게 표현했다. 모두들 범상치 않은 가치관, 에너지 소유자들이었다. 그리고 따로 이야기 하는 가운데, 나와 비슷한 사람을 발견했다.
나는 군대에서 수능시험을 준비했다. 대학에 가면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쓰면서, 춥고 힘든 입시 준비를 이어갔다. 하고 싶었던 것들이 한 20개쯤 되었다. 다 배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해서 2학년 2학기가 되기전까지, 즉 1년 반동안 그중 11개를 한달 이상 배웠다. 언어가 5개, 예술이 3개, 운동이 3개였다. 짧게 한 것은 1달, 길에 한 것은 몇 년까지 했다. 피아노를 1년 이상 쳤고, 수영은 6개월 배웠고, 중국어는 3개월 했다.
제주도 2주 살기 프로그램에서 짧은 시간 많은 것들을 배운 멤버를 보았다. 나와 카테고리가 일치하지 않았지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도전하고 익힌 사람이었다. 보컬이며, 소믈리에며, 스킨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소유자였는데, 그 밖에 많은 것들이 더 있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었는데, 동류(同類) 같았다. “엔진 배기량이 같다”, 혹은 “출력(出力)이 비슷하다” 라는 감정을 느꼈다. 한 번 내기를 제안해 보고 싶었다. ‘각자 해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쭉 작성하고, 앞으로 1년 동안 누가 더 많이 하느냐로 승부를 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질 것 같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감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왜냐면 상대방이 나보다 19년 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혼이었다. 같은 엔진, 같은 출력인데, 나는 가족과 해야 하는 시간도 할애해야 했기에 레이스에서 밀릴 것 같었다.
출발도 하기 전에 패배를 인정한 감정은 생소하다. 열패감이었을까! 이전 직업 세계에서 나보다 뛰어난 역량을 지닌 분들은 모두 선배들이었다. 연배가 나보다 훨씬 위였다. 후배들 실력은 보였다. 동년배들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종이 한장 차이였다. 그래서 나보다 뛰어난 선배들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저런 경지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내가 못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경쟁자들은 내 연배들이었는데, ‘해 보지 않으면 누가 뛰어난 지를 어떻게 알겠느냐’는 마인드로 도전했다. 그래서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같이 뛰면 질것 같은데!’라고 느낀 것은 이질적인 경험이었다.
어제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느꼈을 때”라는 글을 발행했는데, “중년이어서 더 멋지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맞다. 청년은 청년의 매력이 있고, 중년은 중년이 매력이 있다. 청년의 출력이 있고, 중년의 출력이 있다. 엔진 배기량이 같은 차량에, 청년은 혼자 타고, 나는 가족을 태우고 레이스해서 이긴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일 것이다.
늙었다는 것은 신체적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많은 분들이 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패배감을 느낀 그 순간은 내가 늙었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