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사업을 신청하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발표를 하면서, 함께 지원하신 분들에게 제일 많이 듣었던 소리가,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처음 해 보는 일이라서…”라는 말이었다. 뒤에 생략된 말은 결코 “재밌다”, “흥미진진하다”등등이 아니다. 아마 “힘들다”, “하기 싫다”일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처음이란, 설레임이기도 하지만 평생 처음 겪는 일이기에 고통이기도 하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결혼의 스트레스 레벨은, 가까운 가족 사망 수준이라고 한다. 결혼은 좋은 일이고, 행복한 일이지만 처음 하는 사람 입장에서 대단히 힘든 일이다.
나를 주관적으로 평가하면, “처음”일에 흥미를 갖는 타입이다. 그런데도 실제로 난생 처음으로 겪는 일에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끝날 때까지 온 몸에 신경이 서는 느낌이다. 그래서 지원사업에 처음으로 지원해 일생 한 번도 써 보지 못했던 사업계획서를 쓰고, 평가 위원 앞에서 발표를 하면서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너무 힘들다’라고 말하시는 분들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20살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직원을 채용한 적이 있다. 그분에게 있어, 내가 시키는 모든 일은 생애 처음으로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본인이 하고 싶었던 코딩 공부도 처음하는 일이었다. 막막하고, 잘 안 된다고, 서투르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모르는 심정, 답답했을 것이다. 힘들었을 텐데, 그분으로부터 “저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라는 대사를 들어본 적이 없다. 20살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본인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해야 하는 그 상황을 당연시 하고 있었다.
“처음하는 일이 힘든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처음이라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을 당연하지 않게 여긴 것이다. 사회초년생은 당연하게 생각했고, 사회숙련생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관습, 관성, 관행과 같은 벡터가 존재한다. 한쪽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의지와 같은 것들이다. 좋든 나쁘든 살아왔던 대로 살고자 한다. 개선이 되든, 개악이 되든 변화는 무조건 힘들다. 인생 경력이 쌓이면 쌓인 만큼, 벡터가 강해진다. 방향을 꺾는 일은 고되고 귀찮아진다.
지원사업이란, 공짜로 사업비를 받는 일이다. 자기 사업을, 글로 또 말로 잘 설명하면 돈을 준다는 데 사람들이 꺼려한다. “사업계획서 쓰는 것이 처음이라, 발표하는 일이 처음이어서”가 그 이유다. 실제로 그 이유로 포기하기도 한다. 능력의 문제라기 보다 의지의 문제다.
20살을 붙잡아 앉여 놓고, “지금부터 자기소개서를 써라, 그리고 자기 역량을 어필해라, 내용이 좋으면 수천만원을 주겠다”고 한다면 대부분은 쓰고 어필할 것이다.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고 말 주변이 없어,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난 이런 일이 처음이라,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20살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인생에 있어서 처음 아닌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20살에 보던 하늘과 30살에 보던 하늘이 다르다. 평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으로 순차적으로 진급할 때, 대리 직급 혹은 과장 직급은 처음이라 싫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결혼에 관해서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처음 일이라 안 할꺼에요”라고 말하는 이도 없다. 출산, 자녀들의 성장, 자녀들의 결혼과 손자 손녀의 탄생 등, 아침에 눈을 뜨기만 하면 평생 처음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이 싫다는 뜻은 변화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처음이 귀찮아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살겠다는 의지다. 이런 자세의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다. 좋고 나쁨도 가리기 힘들다. 본인들의 스타일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완고함이 느껴진다. 현상 추구, 변화 거부, 기회 포기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완고함을 젊은이에게서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을 싫어하는 분들은 나이 들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