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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HY May 30. 2022

엄마의 갈치조림

 오랜만에 엄마가 집에 오셨다.

역시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잔소리를 시작하셨다.

"신발이 뭐 이렇게 많아? 신발장에 넣어놓지. 신발장이 모자라?"

나는 부랴 부랴 신발장에 신발들을 넣으며 잔소리할 거면 오지 말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런 말에 전혀 타격 안 받는 우리 엄마는 가볍게 웃어넘기고 바로 부엌으로 가셨다. 식탁 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바리바리 싸온 요리 재료들을 꺼내셨다.

" 동네 마트는 너무 비싸. 두부는 여기 와서 사야지 하고 들어갔는데 세상에 두부가 왜 이렇게 비싸? 다른 건 시장에서 사 오길 잘했지. 애호박이 시장에서 2개에 천 원이었는데 여기는 한 개에 천 원이 넘더라."

엄마는 엄마 집 근처 시장에서 싸게 샀다는 무, 애호박, 양파, 고추를 자랑스레 보여주셨다. 엄마 집에서 우리 집까지 두 시간. 그것도 지하철 타고 오면서 엄마는 무거운 배낭까지 메고 오신 것이다. 가져오지 말라고 해도 엄마의 배낭은 항상 빵빵하다.


 요리 재료를 냉장고에 넣으며 대체 뭐 먹고 사냐고 한 마디 덧붙이신 뒤 이번엔 싱크대로 향하셨다.

다음 타깃은 설거지.

"설거지하지 마. 모아놨다가 식기세척기에 넣을 거야."

"바로바로 하면 금방 하는 거 뭐하러 식기세척기를 써? 이 정도는 금방 해."

"집안일하러 왔어? 앉아서 좀 쉬어.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괜찮아. 얼른 밥 해야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넌 하던 거 해."

엄마가 오면 좋으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평소엔 맨날 피곤하다고 하시면서 딸 집에 오면 가만히 앉아계시는 법이 없다. 엄마가 오기 전에 미리 집안일을 싹 해놔도 엄마는 어김없이 일을 찾아내셨다. 못 하게 막고 내가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다른 집안일을 찾아 또 하고 계셨다.


 엄마는 밥을 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갈치조림을 만들식탁에 차린 후에야 드디어 자리에 앉셨다.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얼른 먹어."

매콤 짭짤 달달한 양념이 잘 벤 무와 갈치를 하얀 쌀밥에 올려 먹으니 금세 밥 한 그릇 뚝딱이었다. 고추를 넣어 약간 칼칼한 된장찌개도 입맛을 돋웠다.

"우와~ 진짜 맛있다."

"그래? 다행이네. 더 먹어."

갈치조림의 무가 너무 맛있어서 먹고 또 먹고 또 먹었다. 평소에 무를 전혀 먹지 않는 막내딸이 몇 번을 다시 떠와서 먹는 걸 보 엄마가 놀라셨다.

"아이고~ 이렇게 무 잘 먹을 줄 알았으면 많이 넣을 걸. 안 먹고 버릴까 봐 조금만 넣었는데. 무 남은 거 있어. 다음에 데워먹을 때 무 얇게 썰어서 끓여 먹어."

먼저 식사를 마치신 엄마는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나흐뭇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마지막 숟가락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자 엄마가 이렇게 말하셨다.

"잘 먹어주니 고맙네."

먼 길 와서 맛있는 밥까지 차려 엄마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엄마는 밥 잘 먹 것만으로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서른이 넘고 아이가 있어도 나는 엄마에게 아직 어린 막내딸인가 보다.


  우리 엄마는 애정 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 분이다. 엄마와 대화를 많이 나눠본 적도 없다. 엄마와의 대화는 언제나 잔소리로 끝났다. 그래서 엄마 전화가 오면 마뜩잖게 받기도 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기 바빴다. 엄마 딸로 산지 3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엄마의 잔소리 딸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로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여전히 듣기는 싫지만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다. 좋아하는 음식은 질릴 때까지 해주셨다.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을 언니와 내가 잘 먹어서 음식이 금방 동날 때면 잘 팔려서 좋다며 웃으셨다. 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는데 잘 팔렸다니. 본인의 수고는 잊은 채 자식이 밥 잘 먹는 모습만 봐도 미소가 지어지는 게 엄마인가 보다. 나도 엄마지만 우리 엄마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은 것 같다. 하긴 7년 차 엄마가 어떻게 37년 차 엄마를 따라갈 수 있까.


 지금까지는 약간 서먹서먹한 모녀지간이었지만 앞으로는 좀 더 살가운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잔소리보다 일상의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에게 그럴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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