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HY Oct 04. 2024

결혼기념일에 뭐 할까?

우리는 10월 3일 개천절에 결혼했다.

하늘이 열린 날, 우리의 결혼 세계가 열린 날이다.

개천절에 결혼한 이유는 매년 결혼기념일에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결혼기념일 9주년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결혼기념일을 굳이 각별하게 챙기지는 않았다.

서로 원하는 게 있으면 선물을 주고받고

원하는 게 없을 땐 선물이 없기도 했다.

꽃이나 편지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

나도 남편도 결혼기념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함께 있고 외식하는 정도면 됐다.


우리 가족의 휴일 계획은 대부분 남편이 짠다.

나는 놔두면 집에만 있는 집순이고 남편은 여행이나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해서 휴일에 뭘 할지 결정하는 건 주로 남편이다.

하지만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내가 원하는 걸 해보고 싶었다.

남편에게 "올해 결혼기념일에 뭐 할지는 내가 결정하겠어!"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어딜 가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봤다.

처음에는 전혀 생각이 안 났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볼까?

우리는 비싼 음식보다 삼겹살,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여행을 갈까?

시간이 하루밖에 없다. 당일치기 여행은 힘들어서 싫다.


백화점에 가서 선물을 살까?

우리 가족은 쇼핑을 싫어한다.


보통 사람들이 결혼기념일에 할 만한 일들이 나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해 봤다.

파란 하늘, 초록색 나무,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아이와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간, 푸르른 물, 여유

좋아하는 걸 떠올리다 보니 가고 싶은 곳이 생각났다.


한강!


검색해 보니 여의도 한강 공원에는 그늘막 텐트를 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텐트를 챙겨 여의도 한강 공원으로 갔다.

한강은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마침 날씨도 딱 좋았다.

텐트를 설치하고 앞에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잔디 덕분에 폭신폭신했다.

아이와 남편과 함께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니

"아~ 행복해!"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텐트에서 굴러다니며 쉬다가

자전거를 대여해서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고 오니 출출해져

라면과 치킨을 사 와서 텐트에서 먹었다.

역시 라면은 한강 라면이지!

치킨에 맥주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결혼기념일, 생일,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는 평소와 다른 뭔가 색다른 게 하고 싶다.

유명한 곳에 가보기도 하고 비싼 걸 사보기도 하지만

결국 제일 좋은 건 내 취향에 맞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가 내 옆에 있었고 아름다운 풍경을 봤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완벽한 결혼기념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육아서 읽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