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할 수 없는 건 통제 할 수 없는 듯 해요.
작년 하반기 즈음, ‘통제 가능한 것에만 집중하기’라는 미션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다.
나는 걱정이 굉장히 많았다. 예를 들자면, 새로 채용된 팀원이 나를 “저 대표 말만 수평적이고 실제로는 권위적인 것 아니야?”라고 해석을 할 것 같다던지, ‘우리 팀 같이 작은 팀에서 훌륭한 인재들을 채용할 수 있을까?’ ‘지인이 아니면 아무도 채용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와 같은 걱정들 말이다.
걱정을 굳이 나쁜 것이라 표현하고 싶진 않지만(위기 인지 능력이 높다고 볼 수 있어서(?)) ‘통제할 수 없는 걱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이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상당히 편했고, 실제로 실행을 하고 나니 스트레스가 매우 줄어들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위에서 언급되었던 “권위적인 것 아니야?”라는 말 속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해당 팀원이 나를 권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게끔 만들 수 있는 지속적 신뢰의 전달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주는 배만 불리는 돼지야’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물론 이런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스타트업의 대표는 돈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해당 팀원에게 권위적이지 않다라는 것을 계속해서 납득 시키고 이해 시켜야 한다.
“어떻게 저를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사람의 생각을 ‘감정’의 영역에서 납득 시키려 한다면, 아마 대부분 ‘이제부터 내가 대표를 권위적인 사람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대표가 상처를 받고 내 이미지에 타격이 갈 테니 이제부턴 이야기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 할 것이다.
그럼 본질적으로 해당 팀원은 나를 신뢰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권위’로 그 사람의 생각을 통제하려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방법은 결국 나를 권위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본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안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본다.
더욱 본질 속으로 들어가면, 정말 팀원이나 상대의 입장에서 수평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있는지, 아니, 내가 정말로 수평적이고 평등하고 민주적이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인지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을 하다 보니, 문제들이 매우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을 알게 되었고, 23년 6월의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삶을 대하고자 한다.
걱정으로 인해 부정적 스트레스를 쌓고 있는 모두가 한 번쯤 고려해 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