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날
내가 도쿄에 갈 때면 들르는 최애 서점인 다이칸야마(代官山)의 츠타야(蔦屋)를 엄마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마침 시부야역에서 한 번에 가는 전철이 있어 그냥 탔더니 다이칸야마 역 개찰구를 빠져나가는데 경고음이 울리는 거다. 도쿄 메트로 카드로는 탈 수 없는 도큐(東急) 전철이었다. 간단히 말해 동그라미로 표시된 도쿄 메트로 선과 도에이(道営) 선만 타야 하는데, JR 선만 아니면 되는 줄 알고 도큐 선의 네모 표시를 무시했던 거다. 역무원에게 추가금을 내는데도 묵직해진 동전들을 어떻게든 써보려고 진땀을 뺐다.
역을 빠져나와 츠타야까지 이어진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며 모던한 건축물을 눈여겨보는데 복합주거문화공간인 ‘힐사이드 테라스’가 츠타야 바로 옆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역시 관심 있게 봐야 보인다.
츠타야 서점 구역에 들어서니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침 야외에 자리가 나 엄마를 앉혀드리고 서점 안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 와 마시며 숨을 돌렸다. 한낮의 더위는 약간 남아 있지만 야외 테라스 등에서 차 마시기가 점차 좋아지는 초가을이었다.
잠시 나만 서점 안을 둘러보며 사고픈 책을 두 권이나 샀다. 한창 일본어 번역을 할 땐 좋은 작품을 고르느라 눈에 불을 켰었는데 이젠 내가 읽고 싶은 걸 고르게 돼서 한결 편해졌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신 엄마에게 1관부터 3관까지 시원한 츠타야 서점 안을 보여드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히비야(日比谷) 선을 타고 가미야초(神谷町) 역에서 내려 간 곳은 굽이치는 건축물로 유명한 ‘아자부다이(麻布台) 힐즈’다. 작년에 나 홀로 도쿄타워를 가다가 특이한 건물 모양에 눈여겨봤던 곳이다.
막상 둘러보니 고급 브랜드들이 들어선 하이엔드 쇼핑몰이라 그런지 금세 질려버리고 말았다.
드디어 이날의 하이라이트 코스인 도쿄타워를 향해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갔다.
도쿄를 수없이 오간 나도 작년에야 올라가 너무 좋았어서 엄마를 꼭 모셔가고 싶었다. 서울은 남산타워에, 도쿄는 도쿄타워에 올라야 한다. 뉴욕도 수많은 고층 건물 중에서 단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최고였다. 파리에서 에펠탑을 아래에서만 올려다보고 온 것에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해당 도시의 정취를 제대로 맛보지 못했단 느낌 때문일 거다.
에도시대를 호령한 6명의 도쿠가와 쇼군들이 잠들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인 조죠지(増上寺)와 시바공원(芝公園)이 바로 앞에 보이고, 저 멀리 레인보우 브릿지로 이어진 인공섬인 오다이바(大台場)가 보였다. 예전에 엄마랑 유리카모메 경전철을 타고 오다이바에 가서 해변을 거닐다 작은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지금은 폐업한 ‘오오에도 온센 모노가타리(大江戸温泉物語)’라는 온천 테마파크에 가본 걸 상기시켜 드리며 추억에 잠겼다.
선물 가게에서 팔고 있는 도쿄타워 물병도 샀는데 일반 물보다 4배 가격이어서 멈칫했으나 기념품으로는 손색없었다.
날이 저물자 주위 건물들의 조명불이 하나둘 켜지니 낮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도쿄타워 발치에서 휘황찬란한 불빛이 보이길래 찾아보니 ‘우카이(うかい)’라는 두부 전문점이었다. 일본식 정원을 둘러보며 식사를 하는 곳으로, 예약은 필수인 고급 음식점이지만 맛 평점은 그리 높지 않았다.
에노시마에서 봤던 후지산을 도쿄타워에서 또 보게 되었다.
150m 높이인 메인 데크에서 100m 더 높은 250m에 있는 ‘탑 데크 투어’가 며칠 전에 새롭게 리뉴얼되어 표를 살 때 미리 예약을 했었다. 예약 시간까지 2층 메인 데크에서 기다렸다가 때맞춰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타워가 좁아지는 만큼 적은 수의 인원만 오르게 했는데, 기다리면서 음료도 주고 기념사진도 찍어줬다.
꼭대기에 이르러 문이 열리니 눈부신 빛에 탄성부터 나왔다. 좁은 공간에 사방을 거울로 채우니 넓어 보이는 효과가 난 거였다. 에펠탑을 모방하더니 뉴욕의 서밋 전망대도 벤치마킹한 건가 싶었으나 또 나름 멋졌다.
모든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다시 올려다보니 평소의 빨간 도쿄타워가 아니라 초록이 섞여 있어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로 보였다. 엄마가 좋은 구경 했다며 무척 흡족해하셨다. 타워를 오르기 전,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을 수 있는 곳에서 엄마랑 같이 사진을 찍은 것도 추억거리다.
늦게까지 연 식당을 찾는 것도 지쳐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방으로 올라갔다. 퉁퉁 부은 다리를 샤워로 식히곤 엄마랑 침대에 둘러앉아 TV를 보며 음식을 까먹었다. 편의점 음식도 워낙 맛있게 잘 나오는 일본이라 이만해도 충분한 저녁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