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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 Hayley Dec 31. 2021

그토록 빼고 싶은 살이 빠졌습니다.

어느 간호사의 고백#3 <신규 간호사가 된 후의 나의 일상 변화>  

나는 살이 잘 찌진 않지만, 잘 빠지지도 않는 체질이다. 

딱히 많이 먹는 것도 아니지만(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다들 잘 먹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는 성향이 아닌 흔한 입으로만 하는 365일 다이어터이다. 

헬스장을 다니며 몇 달을 운동하고 소식을 해도 몸무게는 키 163cm에 보통 57~58kg이다.

평범한 사이즈지만 대한민국 여자답게 더 마르고 날씬하길 바란다. 

그런데 간호사일을 정식으로 한 1달 만에 5kg이 쑥 빠졌다. 

그토록 빼고 싶은 살이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1끼를 겨우 먹기 때문이다. 

내가 살이 빠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느 순간 체중이 서서히 줄고 있었다.

또한 매일 앉아서 공부하고 일 할 때도 컴퓨터를 자주 들여다봐서인지 허리 통증이 생겼다.

결국 허리 통증 주사도 맞았다. 주사가 너무 아파서 죽는 줄 알았으나 맞고 나니 나아진 상태이다. 

 


간호사가 입사하고 트레이닝받고 독립(트레이닝 기간을 벗어나 정식으로 담당 환자들을 돌보는 순간)을 하고 한동안은 살이 쭉쭉 빠진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일단 프리셉터 선생님 밑에서 트레이닝 기간 중 첫 달 한 달은 병동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나름 밥도 먹으러 가라고 선생님들이 챙겨주고, 심각하게 환자를 맡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살짝 여유로운 마음이 든다. 


 첫 한 달 동안에 나는 참 철이 없이 '생각보다 간호사들이 그렇게 바쁘지 않네, 할 만 한데?'라는 망측한 생각마저 했다. (과거의 나를 정신 차리라고 때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첫 한 달이 지나 이제 독립이 한 달 정도 남은 기간에는 프리셉터 선생님도 내가 걱정이 되는지 더 엄격해지고, 모든 것을 직접 해보라고 시켜보며, 그동안 배운 것을 제대로 못하면 재촉하고 화도 내시고, 많이 답답해하신다. 

 갑작스러운 무서운 분위기 변화에 조금 놀라기도 하지만 나 역시 독립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하고 겁이 나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먼 일이라고 생각했던 독립이 불과 얼마 안 남았고 이제 내가 10명에서 12명의 환자들의 입원, 수술, 검사, 퇴원 등 전반적인 것을 케어해야 한다니.. 등골이 서늘하다. 

 

 또한 그 많은 일들을 2달 만에 다 배울 수도 없으므로 최대한 옆에서 선생님들이 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적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독립 3주 전부터 식사를 거르기 시작한다.

 대학병원 간호사들이 식사를 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애초에 다른 직장인들처럼 식사시간 1시간이라는 시간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식사를 해도 10분에서 20분 내로 급하게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12명의 환자들 중 누가 수술하고 돌아오거나, 입원을 오거나, 컴플레인을 걸거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선생님들은 근무 시간 9시간 내내 애초에 먹을 생각도 안 하고, 내 프리셉터 선생님은 물도 한 모금 드시지 않은 적이 더 많으시다. 


보통 근무를 데이(6am~3pm), 이브닝(2pm~11pm), 나이트(10pm~7am)로 나눈다. 

평일 데이 근무 때는 보통 제일 바쁘다. 병원마다 다르지만, 아침에 오자마자 물품 카운트하고 12명의 1시간 내로 환자들을 파악하고, 인계를 마치고 환자 라운딩을 돌고 간호기록을 넣고 주사약, 먹는 약을 챙기고, 회진 오면 따라가고, 정규 주사약과 아침 약을 주고, 수술 환자를 내리고, 퇴원환자를 보내고, 점심 약을 주고 나서 점심시간이 있지만 그 사이에 보통 수술 갔던 환자들이 올라올 수 있기에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없다. 

 말로는 이렇게 간단하게 적었지만 그 사이에 세세한 일들이 엄청 많다. 꼼꼼하기 제일가는 간호사들이 차팅 하나 빠지지 않게 일일이 적고, 환자의 상태 및 컴플레인을 의사에게 전달하고, 그 사이에 사건 사고가 꼭 터지기 마련이다. 

 정말로, 데이 근무 때는 눈 코 뜰새 없다. 외과 병동은 수술과 검사가 많아서 더욱 아침에 바쁘다. 이런 간호사들을 위해 병원에서 간식을 올려주지만, 그것마저 한가하게 병동에서 먹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냥 못 먹는 거다. 

 그렇게 못 먹고 3시 넘어서 일이 끝나면 집 가자마자 쓰러져서 간다. 왜냐하면 신규 간호사 같은 경우는 환자 파악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아침에 1시간에서 2시간가량 일찍 가기 때문에 새벽에 출근해서 아침, 점심 거르고 3시에 끝나면 집 가자마자 쓰러져서 잔다. 그리고 7~8시에 너무 배고파서 깬다. 

그럼 저녁을 첫끼로 먹고 잔다. 왜냐하면 내일 또 일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에 한 끼만 먹게 된다.


  이브닝 근무는 상대적으로 비교적 덜 바쁘지만 여전히 할 일이 많다. 이브닝은 아침 겸 점심 먹고 출근하면 수술 가서 아직 내려오지 않은 환자를 받아야 하고, 당일 입원 오는 환자를 받을 준비, 내일 수술 환자들의 수술 물품 및 주사약 준비, 전동 가는 환자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하필 입원 오는 환자가 저녁 먹을 시점에 와서 저녁을 못 먹는 경우가 많다. 운 좋게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해도 거의 '마시듯이' 밥을 먹고 돌아온다. 밥 먹는 것도 정신이 없다. 소화가 안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 선생님은 천천히 먹는 편이어서 아예 병원에서 밥을 안 먹는다고 한다. 그렇게 일이 끝나고 밤 11시 넘어서 집에 오면 피곤해서 그냥 잔다. 그럼 이 날도 한 끼만 먹게 된다. 


 나이트 근무는 비교적 괜찮은데, 밤에 근무하니 아침, 점심 다 먹고 올 것 같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나 역시도 전날 데이나 이브닝 일한 여파가 아직도 가서 피곤해서 하루 종일 자고 한 끼, 많이 먹으면 두 끼 먹고 밤에 출근해서 밤을 홀딱 새운다. 중간에 여유가 있으면 간식을 좀 먹긴 하지만, 나이트 근무 때는 할 일이 정말 많다. 

담날 데이와 이브닝 근무를 위해 의사의 오더를 보고 주사약, 먹는 약, 수술, 시술, 검사 등 모든 것들을 검토 및 확인하고 준비한다. 또한 이상한 오더가 없는지 '오더를 거른다'라고 한다. 거기에 새벽 5시부터 혈압, 몸무게, 다리 둘레, 혈당 등 잴 수 있는 모든 것을 측정하고 환자 몸에서 나오는 모든 피주머니 등을 비운다. 나이트 역시 결코 한가하지 않다. 그러기에 밤을 꼴딱 새우고 에너지를 소비한 채 집 오면 아침 먹지 않고 그냥 잔다. 그리고 저녁때쯤 눈을 뜨고 한 끼 먹고 또 밤 근무를 출근한다. 


간호사들에게 오프날(쉬는 날)이 있지 않는 한, 밥을 잘 챙겨 먹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한 끼 먹는 습관들이 들여지고, 밥을 거르는 게 일상이 되었다. 

강제 다이어트가 되는 셈이다. 

나는 다이어트가 세상에서 지속하기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일하니까 정말 한 달 만에 5kg이 빠졌다. 

또한 시간 개념마저 사라지므로 매일매일 무슨 요일, 몇 일인지 확인한다. 

그렇게 1주일, 1달이 금방 간다.

가족,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채, 쉬는 날에 잠만 자거나, 신규 간호사인 경우 공부를 하면서 보낸다. 

간호사들이 식사를 잘 못하는지는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 

간호대학생들은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생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니깐. 


그러나 1년, 2년 하고 일이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고, 덜 힘들고 피곤하겠지만 

글쎄.. 선배 간호사들도 여전히 식사를 못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연차가 쌓이고 경력이 쌓여도 늘 힘들고 바쁜 직업은 여전히 '간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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