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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 Hayley Jan 06. 2022

당황한 걸 티 내면 안 되는 직업

어느 간호사의 고백#4 <처음 하는 일 투성이지만..> 

 신규 간호사 트레이닝 후 독립한 지 4일째이다. 

수많은 시뮬레이션 및 공부 후에도 병동에서 일하다 보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순간순간 얼마나 당황스럽고 심장이 벌렁되는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고, 당연히 처음 하는 일은 어설플 거고 잘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는 당황하고 모르는 것을 숨겨야 한다. 

처음 하는 일도 최대한 능숙하게 해서 환자들을 안심시키고 믿음을 줘야 한다. 

다음 이야기들은 나를 당황시킨 여러 가지 상황들이다. 


1. 무슨 약인지 잘 모를 때 환자가 물어볼 때.

 대부분의 환자들은 어느 정도 입원하고 나면 본인이 무슨 약을 먹는지 묻지 않는다. 

매일 먹는 약이 그 약이 그 약이고, 병원 경험이 많은 환자들은 본인들의 약을 본인들이 더 잘 안다.

그러나 간혹 입원 경험이 적거나, 호기심이 많은 환자들은 일일이 코치코치 묻는다. 

이건 환자들의 권리이고, 환자들은 알 권리가 있다. 당연히 물어볼 수 있다.

문제는 나는 신규 간호사이고, 병동에서 쓰는 모든 약을 아직 다 외우지 못했다. 

심지어 아는 약이더라도, 환자가 이 약을 왜 쓰냐고 물으면, 자세하게 대답하기 곤란하다. 

중요한 약인 항생제, 진통제 정도는 이미 다 외웠지만 가끔 나도 정확히 왜 주는지 모르는 약들이 있다. 

솔직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의사가 처방을 냈고, 우리 병동에선 이 약을 계속 잘 줘왔고, 나도 신규 간호사라 아직 잘 몰라요."라고 하고 싶으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보통 나는 내가 아는 약들은 잘 설명하고 나머지 약들은 제가 다시 알아오겠다고 한다. 보통 그러면 환자들이 알겠다고 한다. 그리고 잊지 않고 선배 간호사들에게 혹은 인턴 선생님한테 물어서 왜 주는지 설명해주거나 혹은 직접 설명하라고 부탁한다. 중요한 거는 환자의 질문에 환자가 대답을 꼭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한다. 내가 몰랐던 점에 대해서 다음번에는 잘 설명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환자가 혹시나 물을 다른 약들도 다 조사해본다. 매번 물을 때마다 모른다고 할 수는 없으니깐. 

솔직히 나 역시도 궁금해서 간호사나 의사를 붙잡고 물을 것 같다. 동네 병원만 가도 "이 주사 아파요? 이거 왜 맞아야 해요?"라고 묻는데 대학병원에서 수십 가지 약을 먹는 환자들은 더욱더 궁금할 수 있을 것 같다. 


2. 정맥주사(IV)를 실패했을 때

 간호사들 사이에서 IV는 정말인지 최고의 난제 중에 하나이다. 경력이 많은 간호사들이면 모를까. 

신규 간호사인 나는 라인 체인지를 하거나 피검사를 위해 IV를 할 때마다 (보통 한번 잡은 정맥주사는 4일마다 교체한다, 이를 line change라고 부른다) 벌써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한 번에 성공 못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환자들이 있다. 보통은 본인들의 혈관들이 그렇게 좋지 못해서 우리가 라인 잡기 힘든 것을 본인들이 더 잘 알지만, 그걸 이해해주지 않는 환자들이 많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한 번에 성공 못하면 환자들에게 너무나 죄송하다. 정말로 할 때마다 속으로 '제발' 하고 외친다. 그리고  두세 번 찌르면 미안함은 배가 되고 자신감을 잃는다.

그럴 때 선배들은 환자의 혈관 탓을 하라는데 나는 그냥 솔직하게 사죄한다. 그리고 잘하는 선배를 모셔온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복막 투석을 하는 입원 한 지 좀 오래된 여자 환자가 있었다.

보통 투석하는 환자들은 팔에 '동정맥루'라고 해서 혈액투석을 하기 위해 수술을 받은 부위가 있다. 그래서 이 환자도 복막 투석에서 혈액투석으로 갈아타기 위해 동정맥루 수술을 하러 왔고, 그러다 보니 왼쪽 팔은 아예 쓸 수가 없다. 즉, 왼쪽 팔에 혈압을 재거나, 피검사를 하거나, 수액을 꽂으면 안 된단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입원기간 내내 오른쪽 팔에 주사 바늘을 꽂으니까 오른쪽 팔이 주사 피멍으로 남아나는 곳이 없었다. (피멍은 보통 혈관이 터지면 생긴다) 또 보통 여자 환자들은 남자들보다 혈관이 좋지 않으므로 한 번에 주사를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노이로제가 걸린 환자의 보호자(남편)는 내게 신신당부한다. 

"주사 한 번에 할 수 있죠? 간호사들이 한 번에 못해서 이것 봐. 피멍 봐." 

"네 제가 한 번에 해보겠습니다."

주사 놓기 전부터 압박감과 부담감을 배로 받았다. 그리고 토니켓(고무줄)으로 환자의 팔을 묶었는데 팔 정 가운데에 혈관이 떡 하니 보이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곳에 딱 놓았는데, 이럴 수가 한 번에 성공했다. 

"어떻게.. 성공했어요?"

"네 ^^" (야호!)

"이야.. 잘했네."

휴. 이날은 하루의 운을 다 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환자들이 주사를 싫어하는 맘을 알 듯이 우리 간호사들도 속으로 되게 긴장하고 미안하다. 


3. 난생처음 장루를 비워본 경험

 우리 병동이 소화기 내과나 일반외과가 아니기 때문에 장루 환자들이 흔치 않다. 또한 장루를 비우는 것을 보통 보호자들이나 환자 본인이 더 잘하므로 우리가 비워주는 경우도 적다. 

그래서 내 프리셉터 선생님도 내게 장루 비우는 법을 가르쳐준 적이 없고 본인도 비워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문제는 내가 독립한 첫날의 환자 중에 회음부와 다리 쪽의 수술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데 보호자가 없는 환자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한 번도 장루를 비워본 적이 없는데 이분의 장루를 내가 비워야 했었다.

 장루란 정상적으로 대변을 볼 수 없는 경우에 대장이나 소장의 일부분을 복부 밖으로 돌출시켜 그쪽으로 배출구를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소화가 된 변이 그쪽으로 배출되며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위 사진의 주머니가 장루백이다. 빨간 부위가 변이 나오기 위한 돌출된 대장이다. 

 보통 장루를 가진 지 얼마 안 된 환자분들은 적응이 되지 않아 불편함과 수치심으로 자존감이 하락하는 경우가 있다. 이 환자 역시 장루에 익숙하지 않았고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학교에서 동영상을 보고 배운 적은 있지만 한 번도 비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환자분의 안위를 위해 변을 비워야겠다고 결심했고, 최대한 아는 방법으로 가스를 빼고 변을 비워드렸고, 깨끗하게 끝의 부분을 닦아드렸다. 사실 처음 맡아보는 생생한 변의 냄새에 살짝 충격적이긴 했으나 간호사로서 감수하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열심히 비워드렸다. 

 당황했으나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해결했다. 환자분의 표정이 시름 놓은 같았다. 


4. 폭력적이고 irritable 한 환자들

 사실 나를 가장 놀라고 불안하게 한 환자들은 폭력적이고 화가 나고 비협조적인(흔히 irritable 하다고 한다) 환자들이다. 이 분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고, 병동에 어떠한 부수적인 해를 가할지 모르기 때문에 가장 우리를 당황시키는 환자들이다. 

 

 한 번은 한 남자 환자가 아내와 싸운 이후로 화가 나서 안정제를 달라고 했으나, 약이 올라오는 과정에서 화를 이기지 못하고 휴대폰을 병실 안에서 집어던진 적이 있다. 우리는 쾅 소리에 놀라, 누가 넘어졌는지 보러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환자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었고, 나는 떨어진 폰을 주워드렸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폰을 받자마자 한 환자의 행동이다.

 그는 그 폰을 받아서 다시 한번 우리가 보는 앞에서 던져버렸다. 그 폰은 삼성 Z-flip이었다.  

그 예상치 못한 전개와 폭력성에 너무 당황하고 놀랐고,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담당 선생님이 그 환자를 최대한 달래고 회유시켰고, 결국 보호자인 아내에게 전화해서 신속히 올 것을 당부했다. 그 뒤로도 환자를 병실에서 소리를 지르고, 간호사 스테이션에 나와서 욕을 하고 난동을 피웠다. 

 

 결국 부부싸움의 종결과 안정제 복용으로 환자는 가라앉았다. 담당 선생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들었다. 내가 더 충격적인 것은 분명히 이 환자가 내가 나이트 근무 때 봤을 때는 잠을 곤히 잘 자고, 내가 주사를 실패해서 여러 번 찔러도 화를 내지 않던 착한 환자였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봤었다.  

정말인지 우리 인간들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들이다.  


 이 외에도 환자들이 갑자기 혈압이나 혈당이 떨어진다거나, 열이 급격히 오르거나,

환자가 갑자기 정신을 못 차리고 주삿바늘을 모두 빼서 피를 철철 나게 만들어서 침대를 피바다로 만든다던지, 환자가 숨 쉬는 게 갑자기 힘들고 코드블루를 외쳐야 하는 응급상황이 오면,

우리 간호사들을 정말 놀라고 당황스럽게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침착하고, 신속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업무이다. 

신규 간호사로서 모르는 일, 처음 겪는 일 투성이지만, 

도움의 손길을 뻗어 자신의 일로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이 성장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과정들은 신규 간호사의 발전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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