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06.27. 말한 적 없으나, 그 말을 들은 아이-
수학 익힘책을 풀 때였다. 조용한 적막을 깨듯이 지훈이가 교탁 앞으로 나왔다.
"선생님, 진희가 자꾸 제 수학익힘책을 봐서 내 거 보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진희가 저보고 죽여버린대요?"
"진희가? 갑자기?"
수학 시간에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네. 진희 아빠가 저를 하늘나라로 보낼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 그게 사실이라면 지훈이가 정말 많이 놀랐겠네. 진희와 같이 이야기해 보자."
"진희야~ 잠시만 선생님과 이야기해 볼까?"
진희의 표정은 이미 혼난 표정 같았다. 시무룩하고 시선은 아래를 쳐다보면서 앞으로 나왔다. 그 모습만 봐도 반은 반성하고 있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훈이가 왜 속상한 지 진희에게 직접 말해 줄래?"
지훈이는 차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난 너희 아빠가 나를 하늘나라로 보낼 수 있다고 해서 기분 나빴어. 사과를 해 줬으면 좋겠어"
1학년인데도 감정이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속마음을 전달했다. 그림처럼 답변도 나왔으면 했는데...
갑자기 눈을 똥그랗게 힘주어 뜬 진희가
"전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라고 하였다.
"너 그랬잖아! 아까 전에!"
지훈이의 목소리가 높여졌다. 그럴수록 진희의 눈에는 힘이 더 들어갔다. 바나나 보트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손잡이를 꽉 붙잡는 것처럼 눈빛이 흔들림 없이 단호해 보였다. 그래서
"수업 후에 우리 다시 이야기해 보자. 지금 기억나지 않는 게 이따가 다시 생각날 수도 있으니까"
말하고 각자 자리로 돌려보냈다.
하교 시간이 다 되어서 다시 두 명을 불렀다. 진희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자기는 지훈이의 수학익힘책을 보지 않았는데, 지훈이가 보지 말라고 한 게 기분 나빴다고 말을 하였다. 몇 분 만에 자기가 왜 속상했는지 마음의 정리를 한 것 같았다.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기다려 주기를 잘한 것 같았다. 갑자기 진희가 울면서 이야기를 한다.
"수학 익힘책을 안 봤는데, 지훈이가 자꾸 봤다고 해서 제가 우리 아빠가 너를 하늘나라로 보낼 수 있다고 말했어요"
라고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며 말하기까지 참 힘들었을 것 같다. 눈물이 모든 걸 말해 주었다. 1학년이기에 더 기특해 보이고, 더 귀여워 보인다. 진희는 지후에게 뒤늦은 사과를 하고 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 작은 새끼손가락으로 나랑 약속을 단단히 했다. 3월 입학했을 때보다 친구에게 대하는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진 진희이다. 하루하루가 더 기대되는 진희의 모습이다.
큰 사고 없이 지나간 오늘 하루도 감사하게 잘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