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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e Feb 06. 2023

33세, 시급 0원 낫토인턴

본질. 本質. Core.


2022년 12월, 오롯이 한 달을 교토에서 보냈다.


화목금토 주 4일 아침 7시부터 약 4시간 동안, 후지와라식품(藤原食品)에서 낫토를 만들고 납품을 나갔다. 점심을 먹고 자전거로 숙소에 돌아와 낮잠을 자다가, 자문역으로 있는 모 스타트업 업무를 하고 스마트스토어 송장입력을 했다. 저녁에는 산책을 갔다가 책을 읽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후지와라식품의 후지와라 대표

낫토 만들기

낫토를 만드는 일은 간단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큰 통에 콩 십수 kg를 쏟아붓고 물을 받아 문지르기를 반복하며, 불순물을 씻어낸다. 단단한 콩의 감촉을 손으로 느끼며 문지르다 보면 몽글몽글 거품이 생겨난다. 손이 매끈매끈해지는 듯한 게 기분이 좋다.

씻어낸 콩은 물에 잘 담가두고 다음날 다시 만난다. 콩이 수분을 머금으면 두 배 가까이 커져있다. 콩을 압력솥에 넣고 50분 정도 증기로 쪄 준다. 소립小粒・대립大粒・적대두赤大豆・청대두青大豆. 다양한 콩을 삼베 포에 싼 채로 찌기 때문에, 솥에서 꺼낼 때도 콩이 섞이지 않게 조심스레 꺼낸다. 살짝만 힘을 줘도 으스러질 정도로 콩이 말랑말랑해졌다.

콩이 식기 전에 낫토균을 분사해 준다. 시원하게 나오는 물줄기를 보면 기분이 좋다. 낫토균은 힘세고 강하기 때문에, 조금만 분사해도 발효가 이뤄진다고 한다. 그다음엔 포장을 위해 라인으로 옮긴다. 나는 초심자기 때문에 스티로폼 용기를 레인에 놓는 일을 주로 했는데, 조금이라도 늦으면 전체 라인을 세우는 구조라 없는 집중력까지 발휘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용기를 놓았다. 뻥이다.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몇 번이고 라인을 세웠다. 그래도 1~2주 해보니 몸에 익어 나름 일 인분 이상은 한 것 같다. 같은 자세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니 허리가 조금 아프긴 했지만, 하는 동안은 머릿속에 가득한 잡념도 사라지고 좋았다. 포장을 마친 낫토를 30도 정도 되는 발효실에서 하룻밤동안 두면, 우리가 아는 끈적끈적한 타래를 내뱉은 낫토가 완성된다.


9시쯤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커피를 홀짝이며 모니터 앞에 앉아 일을 시작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자극적이고 강렬하면서도 평온했다.


낫토균 미스트를 뿌리고 포장에 들어가는 적대두赤大豆


"IT업계"의 일

대학 졸업 후, IT업계를 중심으로 사업개발과 VC심사역 일을 했고, 2022년에 "개인"이 되었다. 소수정예로 빠른 성장과 큰 임팩트를 만들어가는 회사에 몸담을 수 있어, 다양한 플레이어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경험을 했다. 주변에는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대학생 때 보다도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1. 우리 Product가 어떻게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를 수치로 Tracking 할 수 있고

2.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은 리소스로도 기하급수적인 스케일업이 가능하고,

3. 이렇게 만들어진 임팩트가, 기업과 구성원에게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점이, IT업계에서 일하는 분들께서 느끼는 큰 매력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스를 멈추고 나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내가 하는 일이 결국 누구에게 어떠한 기쁨과 변화를 주는지, 더 가까이서 확인하고 싶었다.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하여 같이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좋았지만, CTR・DAU・PV・Revenue 같은 수치로 표현되는 아웃풋을 보며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잠깐이었다. 우상향 하는 수치가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낸 가치라고 생각해도 무방 했겠지만, 자존감이 적어서일까?  내가,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 가치가 있다는 걸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위스키 모임을 햇수로 4년째 이어가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는, 불분명한 미래가치에 대한 과도한 거품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세상을 바꾼 스타트업들이 미래가치를 인정받아 투자를 받고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뤄왔다. 본질적인 가치 제공 없이 빠르게 외형적인 성장을 이루고 신기루처럼 아른 거리는 장밋빛 비전에 취해 열심히 달려가다, 급격하게 변하는 외부환경에 갑작스레 "현실적"으로 바뀌는 케이스들을 주변에서 보면서 일단 멈춰 서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문제가 IT업계에 한정된 얘기도 아니고,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니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내가 건강한 균형감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는 채로 일단 달려보는 것도 답일 수 있었겠지만, 우선 쉼이라는 선물을 주기로 했다.




왜 낫토인가요

퇴사 이후, "왜"라는 질문을 미취학 아동 그 이상으로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름 시간을 알차게 낭비했다. 이런 질문들은, 결국 겉으로 보이지 않는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본질이라는 건, 결국 많고 많은 성질들 중에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뭔가가 너무 많거나 트렌디하거나 쉽게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것들은 본질이 될 수 없다. 옷이 수백 벌 있어도 입을만한 옷이 한 벌도 없을 수 있는 것처럼, 특이한 소스나 토핑을 끼얹어 순간적으로 주목받는 치킨도 결국 한 철인 것처럼, 결국 본질은 양이 아니라 질이고, 넓이가 아니라 깊이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지닌 물건들을 많이 줄이려 노력하고 무언가를 사더라도 좋은 걸 필요한 만큼만 사는 데 치중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고 확신을 갖기에는 세상에 노이즈가 너무 많기 때문에, 본질을 추구한다는 건 어쩌면 평생 불안하고 괴롭게 살겠다는 말의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콩과 균 그리고 적절한 시간만 있으면 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소중한 낫토. 이 낫토가 "본질"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가시화하고 내재화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낫토를 매개체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비본질에 흔들리지 않고 각자의 본질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돕겠다.

未来に対して客観的な予測をするのではなく、
主体的に描き、実践していく「ヨコク」する人生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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