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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e Mar 31. 2023

약한 사람이 악해지게, 인간의 마음

치와와는 짖는다. 골든레트리버는 평온하다.

망각

사람과의 관계는 외부환경에 따라 쉽게 변하기 마련이고 언제든 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았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고 상대에 대한 감정이 깊어질수록, "이 관계는 지금까지 와의 관계와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빠진다. 멍청해서 그렇다. 수없이 기대하고 실망하는 걸 반복해 왔어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상처

그리고 관계가 무너지게 되면 기대라는 벽을 더 많이 쌓아 올린 인간이 더 큰 절망으로 떨어지게 된다. 관계는 상호적인 존재라,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이를 무너트릴 수는 없을게다. 하지만, 무너져가는 관계를 다시 쌓아 올리기 위해 나 자신을 상대방에게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관계가 무너지게 되었을 때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되는 건 안타깝게도 더 노력했던 쪽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상처 입은 한쪽은 그렇지 않은 한쪽에게 더 큰 타격을 입어 나락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악의가 있었든 없었든.



에고이즘과 연약한 인간

줄곧 착하고 바른 사람이 상대방의 숨통을 조일만큼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걸까. 아마도, 그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한없이 연약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의 불안한 삶을 지탱해 보려 발버둥 친 그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불이익과 타격을 줄지 몰랐고, 애초에 그럴 의도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생각해 볼 여유가 있었다면 내 버둥거림이 상대방에게 해악이 된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연약한 인간은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 자신의 이익이 최대화되는 행동을 올바름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자신을 받아들여 줄 숙주를 찾아 기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상대방도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빨아먹힐만큼 빨아 먹히고 나면 무너진다. 그리고 연악한 인간이라는 이름의 기생충은 스스로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재빠르게 또 다른 숙주를 찾아 나선다.


작고 연약한 치와와는 짖는다. 상대방에게 상처주려 짖는 게 아니라, 그냥 모든 게 무서워서 짖는다. "나는 작고 연약하니까 짖을 수밖에 없어"라며. 하지만, 스스로가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나보다 연약한 누군가를 보듬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지기 전까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 받아줘"라고 짖고 또 짖는다. 


나는 치와와가 아니라 골든리트리버다.

그래서 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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