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들'의 자화상

여행의 순간

by 미르mihr

나와 딸들이 했던, 이탈리아 여행의 시작과 끝은 모두 바티칸 미술관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성당과 미술관에 시달리던(?) 딸들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을 끝으로 "성당이랑 미술관은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라고 내게 선언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여행을 끝내는 날, 다시 로마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넉넉히 남은 시간 동안 무얼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천지창조'는 한 번 더 보고 가야지"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미술에도 관심 없고 종교적 신앙심도 전혀 없는 이들도, 시스티나 예배당에 들어가면 저절로 입이 떠억~ 벌어지게 되어있다. 물론 학교 운동장만 한 예배당의 천정과 높은 벽을 올려다봐야만 하기에 해부학적으로도 입이 저절로 벌어지게 되어있지만, 그 넓은 천장과 벽을 가득 채운 생생한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과 에너지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림 자체도 물론 걸작일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예배당과 일체가 되어 그려진 그림을 조각조각 내어 일반적인 그림의 크기로 떼어내서 따로따로 본다면, 아마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기분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내 경우에는 우선, 비인간적인(!) 그림의 크기와 규모에 압도된다고도 볼 수 있는데, 내게 더 놀라웠던 건, 그게 한 사람이 수년에 걸쳐 고독속에서 홀로 해낸 작업의 결과라는 점이다.


여행의 첫날에 갔을 때, 우리는 바티칸 미술관의 모든 관들을 빠짐없이 돌면서 유명하다는 작품들을 모두 섭렵했다. 입구에서 나눠 준 지도에는 미술관 전체를 둘러보는 정식 루트와 빠르게 유명한 작품들 위주로 돌아볼 수 있는 패스트 트랙이 표시되어 있었다. 언제나 '가성비'가 중요한 우리는, 물론 정식루트를 택했다. 같은 돈 주고 더 많이 봐야 좋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자 해놓고 막상 딸들은 그림이나 조각작품보다, 더 조각 같고 더욱 그림 같은 잘생긴 서양-백인 젊은-남성들을 더 많이 감상하긴 했다. 그 나이 때는 걸어 다니는 생생한 그림에 훨씬 더 마음이 가는 법이니, 어쩌겠는가. '가성비'라는 것도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 다시 바티칸 미술관에 갔을 때, 우리는 바로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직행했다. 그곳만 보아도 미술관에 내는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는 것에 셋 모두 동의했기 때문이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바티칸 미술관 전체를 다 돌아본 후 맨 마지막에 들어갈 수 있게 루트가 짜여 있다. 첫날 오전에는 베드로 성당을 둘러보고 (심지어 돔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그날 오후 이어서 미술관 전체를 돌았기 때문에 시스티나 예배당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체력은 거의 방전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곳은 그런 상태였던 우리마저 압도할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회랑의 벽에 걸린 그림을 보면서 지나가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천장을 비롯해 사방 벽까지 가득한 작품을 둘러보아야 하는 그곳은 언제나 선채로 고개를 쳐든 사람들로 가득하다. 양쪽 벽 앞에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지만, 거기에는 이미 빈틈없이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이미 긴 루트를 따라 걸으며 지친 데다가 그렇게 앉은 김에 거대한 그림을 마음 놓고 보느라고, 물론 나라도 그랬겠지만, 아무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첫 번째 갔던 날에는 우리도, 거기 서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많은 사람들처럼, 잠시동안 선채로 고개를 쳐들고 있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물러나왔다. 그러나 마지막 날 다시 찾았을 때는, 바로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직행했기에 체력이 충만한 상태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끈기와 빈자리를 향해 재빨리 달려가는 민첩함마저 유지할 수 있었다.

*


그렇게 자리에 앉아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그림도 그림이지만 이전의 우리처럼 서 있는 사람들이 눈에 잘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바티칸 미술관에서 유일하게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다. 검은 양복을 입은 관리인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을 향해 '노 카메라'를 외치고 있다. 촬영이 금지라니깐 당연히 촬영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장면을 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대체 왜 여기만 촬영 금지인 걸까?"

"그림이 훼손될까 봐 그런가..."

"작품 보존을 위해서 빛도 거의 차단한 테피스트리 방에서도 촬영이 가능했는데?"

"그니깐... 왜 여기만 그럴까?"


여행을 다녀와서 나중에 찾아보니, 천장화를 복원한 일본의 NHK와 무슨 협약인가를 맺어서 그렇다는 설이 있었지만, 정확한 건 아닌 듯하다. 바티칸 미술관 홈페이지 안내에 나온 대로 (콘클라베까지 이루어지는) 성스러운 장소에 대한 경의에 대한 표현으로 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예배당 안에서는 촬영뿐만 아니라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사람을 모아놓고 하는 가이드 해설 또한 금지다. 나도 관광객 '무리'에 섞여 가이드를 따라다닌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런 무리로부터 떨어져 있으니,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알고 싶은 '소란스러움'이 어쩌면 명상의 일종일 수 있는 고요한 작품 감상에는 방해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진 촬영 역시 큰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자기 것으로 붙잡아 두고 싶은 욕망, 그렇게 붙잡은 것으로 자아의 성을 만들고 싶은 욕망, 그런 욕망들의 아우성은 신적 존재 앞에서 느껴야 할 겸허함 같은 고요한 경건성과는 아주 멀리 있을 것이니 말이다.


아무튼,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우리 셋은 한동안 조용히 있었다. 그러다가 가이드를 따라다닌 적도 있었던 나는, 겸허나 고요함과는 여전히 멀리 있는 나는, 여행 오기 전 미리 공부한 알량한 지식을 뽐내고 싶은 마음에 딸들에게 퀴즈를 냈다.


"최후의 심판에 미켈란젤로가 자기 얼굴도 그려 넣었다는데, 저 그림 속 인물들 중에서 어떤 사람일 것 같아?"

"..... 정 가운데 있는 심판자 예수?"

"아닌데... 그런데 그렇게 대놓고 자기를 주인공으로 그리는 건 쫌... 그렇지 않아?"

"왜? 나라면 내 얼굴을 가운데 있는 주인공 예수로 그릴텐데."


주인공은 고사하고, 미켈란젤로는 하필이면 벽화 속에 자신의 모습을 성인(聖人)의 '껍데기'로 그려놓았다. 그가 그림으로나마 지옥에 보내버린 권력자가 자기 얼굴을 지워달라고 항의하자, 그의 얼굴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 대신 자신의 얼굴을 그보다 더 흉측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예술가가 자기 자신의 자화상을, 그런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그려 넣지는 않았을 것 같다.



*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릴 당시의 미켈란젤로는, 조반니 파피니가 쓴 그의 전기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를 그림 그리는 화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다. 당시 그는 대리석을 떡 주무르듯이 하는 피에타와 다비드 상으로 유명한 조각가였고, 그런 그가 로마에 왔던 이유도 그림이 아니라 교황의 무덤을 장식할 조각 때문이었다고.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과 권력자의 욕망과, 경제적 현실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원한적 없던 '붓질'을 해야만 했다.


"이 벽화 또한 그에게는 처벌이었다. 그는 일생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었던 적은 드문 편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부쳐 자기의 예술도 아닌 것에 몰두하느라 시간을 빼앗겼으며, 유일한 소망은 하느님의 도움을 바라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 하느님께 불만을 끊임없이 토로했다." (조반니 파니니,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는 불만에 차서 <천지창조>를 완성한 후로 20년도 더 지난 뒤인 60대에 나이에 <최후의 심판>과 그 안에 '성인의 껍데기'로서 자기 모습을 그렸다. 그때도 조각가인 자신이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현실이 불만스러워 그랬던 것일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는 위대한 화가들은 대체로 자신의 모습인 자화상을 멋지게 혹은 예쁘게 남겨놓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최후의 심판>을 그린 미켈란젤로보다 100년 후에 태어난 또 다른 미켈란젤로인 카라바조 역시 자화상을 여럿 남겼다. 그중 젊은 청년 다윗에게 목이 잘리는 늙은 골리앗의 모습이, 성인의 껍데기로서 영혼에 붙들려있는 미켈란젤로의 자화상과 왠지 모르게 내겐 닮아 보인다. 살인까지 저질렀던 카라바조는 성격이 괴팍하고 행실이 고약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인데, 말년에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저런 그림을 그렸다는, 물론 내게는 별로 설득력 없어 보이는, 그런 '설(說)'이 있다.


뭔가를 그리기 위해서는 오래도록 바라보고 그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 자기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고, 그리는 동안 다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 정말 혐오하는 대상을 그렇게 오래 바라보고 마음에 품으면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정말 싫은 모습이라면 외면하거나 없애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자화상 속에서 자신의 껍데기를 들고서도 외면하고 있는 성인이나, 자기가 베어낸 골리앗의 머리를 든 혐오스러운 표정의 젊은 다윗처럼. 성인의 껍데기나 골리앗의 표정은 그냥 담담해 보인다.


두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동안 내 안에서 나오는 느낌은, 아무래도 두 화가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 게 아닐까 싶다. 그게 비록 영혼이 없어 보이는 껍데기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거나, 남들에게는 괴물 같아 보이는 자기 자신일지라도 말이다. 예술이란 그런 것이고, 예술가란 그렇게 이 세상에 실존하는 모든 것, 특히 자기 자신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런 초라하고 흉측한 모습만이 아니라, 골리앗을 죽인 정의감에 불타는 어릿 다윗과 자기 껍데기를 놓지 못하는 고결한 영혼인 성인도 결국 화가 자신일 테니 말이다.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그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윤동주, <자화상> 중에서)




** 추신 : 이 글의 대문사진은, 겸허함과 경건성에 다가가지 못하면서도 자기 욕망을 내세울 용기도 없는 소심한 필자가 욕망에 솔직한 큰 딸을 사주(使嗾)(?)해 '노 카메라'를 외치던 관리인 몰래 촬영한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 아울러 셀카모드로 찍은 거라 실제 그림과는 좌우가 바뀌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