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로 Moreau May 26. 2024

잃어버린 9그램을 찾아서

오늘 매장 근무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참외 1Kg짜리 사 왔는데요, 집에 와서 저울에 달아보니 991g이에요. 이거 어쩌실 건가요?"


"네? 조합원님, 구백몇 그램이라고 하셨나요?"


"991g이요, 9g이 뭐 얼마 안 되긴 하지만, 항상 믿고 사는데 이러면 되나요?"


1Kg 규격의 과일과 채소는 1Kg를 초과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보니 정말 어쩌다가 991g만큼만 담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죄송하다고 생산지에서 포장할 때 좀 더 주의를 당부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참나, 9그램 부족한 걸 알았다 해서, 그게 그렇게 화가 나고 실망스러운 일인가?'라고 개탄하려는데, 문득 오래전 내가 했던 '짓'이 떠올랐다.


*


수년 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봉골레 파스타를 주문했다. 맛있게 열심히 먹다 살펴보니 파스타 속 조개들의 1/3 정도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서빙해 주던 종업원을 불러서 이렇게 물었다.


"이 조개들을 어떻게 먹으란 말인가요?"


종업원은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조개입을 벌려 주겠다고 내가 먹던 접시를 주방으로 가져갔다.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그때 (지금의 나처럼) 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조개를 다 먹어야 되겠어?"


나는 (오늘 매장으로 전화를 했던 그 조합원님처럼) 내 믿음에 대한 배신감과 또한 잘못된 것은 시정하도록 정당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정의감에 불타서 말했다.


"내가 꼭 그걸 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봉골레 파스타인데 조개가 그렇게나 많이 입을 다물고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


매장에서 파는 1Kg짜리 참외가 9g이 미달되는 일은, 보통은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다가 그런 걸 집에 가져가서 저울에 실제로 달아보는 일도, 보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래전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봉골레 파스타 안의 조개들이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일은, 보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그런 조개들의 입을 벌려내라고, 그것도 파스타를 반쯤 먹다 말고 요청하는 사태도 보통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보통은 잘 일어나지 않는 (안 좋은)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면, 그중 하나는 내가 만든 것이고 그때의 나는 삶에 힘들고 지쳐 있을 확률이 높다. 오래전 삶 속에서 뭔가 잘못된 느낌을 시정할 힘이 없었던 내가, 그저 힘없는 봉골레 파스타 안에서 정의를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조개들은 9g이나 되었을까?


오늘 참외 9g 앞에서, 아마도 삶에 대한 배신감이 터져나왔을 그 분의 마음이, 이 밤을 지나며 조금이나마 고요하고 평온해지기를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