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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Jun 01. 2024

부산에 왔다

수서에서 SRT를 타고 두 시간 반 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물론 우리 집부터 수서까지 가는 데만도 한 시간쯤 걸렸지만) 어쨌든 놀랍게도 부산이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다니! 기차 안에서 딸과 수다도 떨고, 딸이 화장하는 모습도 구경(?)하고, 까무룩 졸기도 하다가, 준비해 온 마스다 미리의 책 [세계 방방곡곡 여행일기]를 펼쳐보았다.


흰 페이지들인 책의 중간쯤의 파란색 페이지들이 눈에 확 띄었다. 타이완 여행 부분이었는데, 다른 여행지보다 분량도 많고 시작과 끝부분에 화려한 꽃무늬까지 집어넣어 편집한 것이, 아무래도 작가가 그곳 여행을 편애한 티가 팍팍 났다. 그래서 그곳부터 아주 천천히, 그림도 잘 살펴보면서, 읽기 시작했다.


2박 3일간 타이완에 갔는데, 여행 일기에 쓴 건 대부분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두유나 만두는 대충 알겠지만(그것도 물론 내가 아는 것들과는 다른 것들이지만) 그밖에  수안차이나 탕위엔, 또우화 같은 내가 먹어보기는커녕 들어보지도 못한 음식들이 많았다. 미리 그것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기필코 그것들을 맛보고 싶어 별로 대범하지 못한 중년의 여성이 홀로 아기자기하게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중에서 도저히 혼자 먹으러 갈 수 없는 걸 먹기 위해서, 친구들과 타이완 어느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인상적이었다. 각자 여행의 일정도 다르고, 묵는 곳도 다른데 다만 그날 저녁만 잠깐 함께 하는 만남. 혼자 하는 여행이 자유롭고 좋지만, 혼자 먹는 밥은 아무래도 맛있는 걸 찾아 먹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좋을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라고 하면, 늘 여유로운 일정으로 느긋하게 그곳의 모든 걸 즐겨야 한다고만 여겼던 나에게 이 책은 좀 소소한 충격이다. 작가는 그냥 짧게 짧게 어디든 떠나고, 여행 목적이 아니라 일 때문이더라도 그 길위에서 아무것도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고, 아주 소소한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즐길 줄 알았다. 그런 걸 좀 배워보고 싶어졌다.


*


국내 여행을 갈 때 나는 웬만하면 배낭을 메고 다녔다. 그런데 이번에는 캐리어를 끌고 가겠다는 둘째를 따라서, 나도 내 전용으로 캐리어를 하나 끌고 왔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마치 외국여행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부산역에 내려 다시 숙소까지 캐리어를 끌고 가자니, 두 손이 자유롭지도 못하고 시끄럽기도 하고 하여간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눈앞에 "짐 캐리"라는 커다란 글자가 보였다. 옛날 미국 영화배우 이름을 딴 어느 회사에서, 여행자들이 끌고 온 캐리어를 부산 역에서부터 숙소까지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해주고 있었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당장 그곳에 들어가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리고 바로 숙소로 가는 대신에, 가벼워진 몸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세상은 참말로 점점 발전하는고나!


*


숙소가 있는 해운대 바닷가에 100층짜리 건물이 있다! 내가 어릴 적 나를 남산 타워나 63 빌딩에 데려갔던 친정 엄마의 잔상효과인지, 오늘 딸과 함께 그 100층 짜리 건물 전망대에 올라갔다. 100층을 올라가는데 오십몇 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1초에 2개 층을 올라가는 셈이니, 귀가 먹먹했다. 먼바다도 보이고 투명한 바닥 아래로 바로 밑 바다도 보여 매우 아찔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건, 100층 화장실의 변기 앞 전면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망망대해의 풍광이었다. 마음 같아선 처음 맛보는 100층 오션뷰를 만끽하면서 볼 일을 보고도 싶었지만, 아무래도 낯설다 보니 일이 잘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나와 같은 촌사람을 위해, 다행히 블라인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무사히 볼 일을 마치고 다시 오십몇 초 만에 100층을 내려왔고, 한동안 귀가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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