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화시키는 것과 부화된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 이 글은 솔 출판사의 융 기본저작집 제8권 <<영웅과 어머니 원형>>을 읽고, 필자에게 감명을 준 부분을 중심으로 발췌하여, (가톨릭의 '십자가의 길'을 흉내내어) '영웅의 길 총 10처'를 묵상해보기 위해 작성한 것입니다. #
제1처
퇴행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리비도가 과거의 대상을 놓지 않고 영원히 붙들어 두려는 현저한 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성은 모든 열정 중에 가장 알려져 있지 않은, 가장 강렬하고 악질적인 것이다. 타성의 격렬함은 눈에 잘 띄지 않고 그것이 자행하는 손상은 완전히 숨겨져 있다. 퇴행하는 리비도는 반드시 부모상을 되살리고 유아기의 관계를 재현하려 하므로 근친상간적 모티브가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제2처
...그대들 유한한 존재에겐 알려지지도 않았고,
우리도 그 이름을 즐겨 부르지 않는 여신들
그들의 거처로 가려면 아주 깊은 심연으로 잠입해야 합지요.
그들을 필요로 하다니 잘못을 저지르는 겁니다.
길이 없어요! 발을 들여놓은 적도 없고,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는 길, 바랄 수도
가볼 수도 없는 길이죠. 그럼 준비가 되셨습니까?
열어야 할 자물쇠도 없고 빗장을 풀 필요도 없으며,
외로움 때문에 이리저리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 황량함과 외로움의 참뜻을 알고 계십니까?
마음을 단단히 가지세요. 무척 위험합니다.
제3처
아이가 어머니와 무의식적 동일성 상태에 있는 동안, 아이는 아직 동물의 혼과 하나이다. 의식의 발달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의 구별로 귀결될 뿐만 아니라, 부모와 가족과 구별됨으로써 무의식과 본능의 세계와 상대적인 결별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그리움은 계속되며 힘겨운 적응의 행위가 요구될 때면 항상 옛 유아 시절로 돌아가고, 퇴보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며 그럼으로써 근친상간의 상징성이 생기게 된다.
제4처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자는 늘 뒤돌아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이러한 그리움은 이미 성취한 모든 것을 위협하는 소모적인 열정이 될 수 있다. 이 경우에 '어머니'는 한편으로 가장 최고의 목표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위험한 위협적인, '무시무시한' 어머니로 나타난다.
제5처
상처를 주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화살들은 밖에서 공격해 오는 외부의 소문이 아니라, '내면의 매복소' 즉 무의식에서 날아든다. 그것은 화살처럼 우리의 살 속에 꽂히는 자신의 욕구이다. '그대에 의해 무겁게 짐 지워진, 지혜를 아는 자여! 자기를 인식하는 자여! 현명한 차라투스트라여!... 그대는 가장 무거운 짐을 찾는구나: 바로 거기서 그대는 자신을 발견하였구나...' 십자가 또는 영웅이 이끌고 가는 무거운 짐은 바로 그 자신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의 자기(Selbst)이다.
제6처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쥐어주려고 왔다.
내가 온 이유는 한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와 화합하지 못하게 함이며,
또한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화합하지 못하게 하려고 함이다.
그래서 '원수가 바로 자기 집안 식구가 되니라'.
나보다 아비와 어미를 더 사랑하는 자는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제7처
영웅은 자주 버려지고 그래서 자주 양부모에게 양도된다. 인간은 평범하게 태어날 뿐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신적인 것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다시 한번 태어난다. 이런 방식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영웅, 즉 그는 일종의 반신(半神)적 존재가 된다.
제8처
단식으로 허약해진 히아와타가
나뭇가지로 만든 잠자리에서 일어나,
오두막 안의 희미한 빛을 뒤로하고 나와서,
지는 해의 타는 노을로 향하여 나아가,
(옥수수의 신) 몬다민과 싸웠다;
순간 그는 머리와 가슴에서 고동치는
새로운 용기를 느꼈고,
새 생명과 희망과 힘이
모든 신경과 힘줄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제9처
우리는 샘에 다시 도달하기 위해 몸을 더욱더 깊이 숙여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높은 곳에 있다고 느낄 때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용감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보기 드문 성실성을 갖기 위해 정력적인 시도를 감행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엄습하는 욕구들, 그리움, 두려움의 꺼림칙함, 그리고 암흑을 예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그곳에서 멀리 도망가려 하지만, 삶은 그 속으로 흘러내려가려 한다. 이러한 희생이 자발적으로 일어난다면, 이것은 뒤집힘이나 파괴가 아니라 오히려 변환과 유지가 된다.
제10처
희생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제물을 요구하는 하데스와 화해한다. 미트라스 제식에서 황소의 죽음은 무서운 어머니, 즉 무의식에 바쳐지는 죽음이다. 무의식은 의식이 그의 뿌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신들의 능력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식의 에너지를 자신에게 끌어당긴다. 의식은 그의 소유와 힘을 무의식을 위해 포기한다. 이로써 하나의 대극의 합일이 가능하게 되고, 그 결과는 에너지의 해방으로 나타난다. 희생의 행동은 동시에 어머니의 수태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