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0

<천 개의 고원> 하루 네 쪽 읽기, p.217~220

by 미르mihr



의미하는 바를 알기도 전에 세계는 의미작용함으로써 시작되었고, 기의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주어졌다... 무슨 뜻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계, 그것은 항상 기표니까. 불확실함 즉 낯선 무력감이, (언제나 다른) 기호를 참조하는, 기호를 강타한다. 그러나 (기호의) 사슬을 구성하는 기표는 강력하다.


Le monde a commencé par signifier avant qu'on sache ce qu'il signifiait, le signifié est donné sans être pour autant connu... Peu importe ce que ça veut dire, c'est toujours du signifiant. Le signe qui renvoie au signe est frappé d'une étrange impuissance, d'une incertitude, mais puissant est le signifiant qui constitue la chaine.






주변에 사주명리학 공부를 열심히 하는 지인들이 몇 있는 덕분에, 원하지 않아도 '사주팔자'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얻어듣게 된다. 듣다 보면 재밌는 구석이 꽤 있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건, 음양오행론이다. 세계를 구성하는 물성(物性)은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이런 다섯 가지의 자연물이며 그것들은 다시 각각 음(陰)과 양(陽)의 양면이 있다는 것. 그러한 세계에서 인간도 예외는 아니라서, 자연의 생성-변화-소멸과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원리다.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많은 일, 특히 태어남과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삶의 조건, 각자의 몸체가 지닌 특성과 기질 그리고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죽음 등을 생각하면, 꽤 설득력이 있고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내게는, 세계의 구성 원리에 대한 다른 많은 이론들, 원소론이나 진화론, 심지어 MBTI 같은 것들 역시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아, 창조론만 빼고!) 게다가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를 상징한다는 여러 사물과 상황, 행위 등을 따져 해석해 보는 일은 어찌나 흥미롭고 이런저런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하지만 얻어 듣는 사주 이론이 싫은 이유도 있다. 사주에 대해 말하게 되는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행위하는 이유보다는 행위하지 않는 이유, 즉 나태함이나 죄책감에 대한 정당화를 위해 '악용'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 (여럿이서 각자 내게 들려주는 사주이야기는 조금씩 다 다르고, 내가 보기에 그들은 다 고만고만한 실력자들인 것 같은데) 굉장히 확신해서, 나는 놀란다. 어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자기가 실험할 수 있는 의지를 그렇게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확실하고 확고하다는 건 실은, 자신의 욕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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