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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Mar 06. 2024

한국 현대미술의 시차

Time Lapse: 어느 시간에 탑승하시겠습니까?

최근 몇 년간 현대미술계에서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을 받았다. 이는 비단 한국 출신의 미술 작가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예술이 매력적인 콘텐츠로 떠오르고 미술 시장의 규모도 함께 커지자 리만 머핀, 페로탕, 타데우스 로팍, 화이트 큐브 등 해외의 이름난 갤러리들이 차례로 한국에 상륙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 갤러리는 리움 미술관이 들어선 용산, 프리즈(Frieze)를 품은 강남에 들어서며 종로에 치우쳐있던 허브 다각화를 주도해 왔다. 


2023 프리즈 기간과 맞물려 서울에 진출하며 이진주 작가가 포함된 단체전을 개관전으로 내세운 화이트 큐브에 이어, 세계적인 화랑들이 한국 현대미술에 아낌없는 관심을 보내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글로벌 갤러리들이 일제히 새해 전시 라인업에 한국 작가를 내세웠다. 2월 24일 막 내린 리만 머핀 서울의 <원더랜드(Wonderland)> 그룹전, 타데우스 로팍의 <노스탤직스 온 리얼리티(Nostalgics on realities)> 단체전에는 한국 태생의 젊은 작가들이 각각 참여했다. 수행하듯 자연의 숨결을 조각과 캔버스에 담아 온 박서보, 이배, 심문섭을 비롯한 한국미술의 거장을 일찌감치 해외 개인전을 통해 다수 소개해온 페로탕 서울에서는 이상남 화백의 개인전을 3월 11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Jinhee Kim, In the Theatre, 2023 ⓒ Jinhee Kim,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isWeekendRoom


그중에서도 페이스(PACE)의 행보는 단연 눈길을 끈다. 작년 11월, 뉴욕 첼시 공간에서 유영국 개인전을 개최한 페이스 서울에서는 <Time Lapse: 어느 시간에 탑승하시겠습니까?>라는 제목을 앞세워 인물(형상)을 기반으로 회화 작업을 선보이는 한국 작가 단체전을 공개했다. 다양한 세대로 구성된 작가 8인은 자신을 둘러싼 시대의 사회적 변화를 감지해, 각자가 통과하는 시간을 그림을 통해 표현해 낸다. 



시간의 변화가 인간의 삶과 경험에 미치는 영향,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의 가치를 깨닫는 시점의 차이를 고려하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 같은 시간은 절대적인 듯하면서도 지극히 상대적이다. 시차는 일반적으로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두 지점 사이의 시간대 차이를 뜻하지만,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 간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시차는 이번 전시에서 어떻게 해석되었을까? 


<타임랩스> 전시전경, 2024, 페이스 서울, Photo: Sangtae Kim, Courtesy of Pace Gallery


비영리기관인 두산갤러리 큐레이터를 역임한 맹지영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총 3개 층 공간 전체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상 회화 작품 위주로 변화해 온 패러다임을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포착한다. 1층에서는 동시대의 다른 세대를 산 두 작가, 서용선과 이우성이 각각 30대 후반에서 40대 맞이하던 1990년대와 2010년대 군상을 화폭에 담은 대형 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두 작가의 표현 방식도, 기록한 시대상도 모두 다르지만 이들이 관찰하고 그려낸 타인의 모습은 당시의 공기와 정서를 짙게 품고 있다. 


1층의 익숙한 도시와 사람 풍경을 잇는 2층에서는 존재의 사라짐에 관한 사유를 담은 김정욱, 박광수, 류노아, 이재현의 작업이 다양한 층위로 전개된다. 이는 시간의 유한성과도 결부된 주제이기도 하다. 불완전한 상태의 시간이 가져온 시차는 때로는 미묘하게 어긋나 흐릿한 인물상의 겹친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오랜 시간을 견뎌온 유적이나 신화, 자연 혹은 우주에 자신의 서사를 덧붙인 작가에 의해 정성스럽게 그림에 담긴다. 


<타임랩스> 전시전경, 2024, 페이스 서울, Photo: Sangtae Kim, Courtesy of Pace Gallery


3층으로 올라가면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정수정 작가와 일상의 순간을 역동적이면서도 빛나도록 그려온 김진희의 작품이 우리를 반긴다. 실제로 이번 전시를 위해 리투아니아에서의 전시가 끝나자마자 한국을 찾았다는 김진희 작가 작품이 겪어온 물리적인 시차부터 유한한 인간의 존재 앞에 시간이 상기시키는 정신적 시차까지, 스스로 경험한 시대를 담아낸다는 미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며 자신을 알아가는 8인의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이내 전시의 제목을 되새겨 보게 된다.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에 담긴 시간의 의미, 타인과 다른 시차를 산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안타까운 감정들을 돌이켜 보게 되니 말이다. 아, 물론 한국 미술가가 작업에 공들이는 시간과 세계 미술계가 한국 미술의 시간에 탑승하는 시차가 점차 짧아지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소 페이스 서울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67)

기간 2024.02.15 - 2024.03.13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4.02.26 게재)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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