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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May 03. 2024

배영환이 그려낸 마음풍경

So Near So Far:  배영환 개인전

배영환 작가 (제공: BB&M)


1990년대 후반 한국의 시대상을 대변하는 주요 현대미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배영환 작가의 개인전이 BB&M에서 진행 중이다. 2005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 작가이자 아트선재센터(2009), 삼성미술관 플라토(2012)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뉴뮤지엄, 모리미술관 등 세계 유수 기관 전시에 참여하며, 전방위적인 활동을 전개해 온 작가가 7년이란 오랜 공백을 깨고 돌아온 개인전이다.


Mindscapes No. 13 (Cold comfort for change), 2024 (제공: BB&M)


성북동 언덕배기 양옥을 개조해 들어선 BB&M 갤러리 내 자연광 비추는 전시장에 들어가며 마주한 첫 작품은 “처음처럼(Like the First Time)”이다. 도시 개발로 철거된 동네 길가에 버려진 자개장을 “구조”한 후 해체해 만든 12현과 6현으로 구성된 더블넥 기타가 장승처럼 우뚝 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기타 아래 놓인 암흑 같은 거울 좌대 위에는 산산조각이 난 소주병, 맥주병 조각이 반짝거리며 표류하고, LP 대신 뇌의 형상을 한 돌 하나가 턴테이블 위에서 끊임없이 분주하게 회전한다. 돌멩이의 조용한 속삭임 너머 나지막이 안쪽에서 들려 나오는 어디선가 들어본 선율, 조금은 엉성한 기타 연주 소리를 따라가면, 이내 이번 개인전의 제목이 된 영상이 등장한다.


전시 전경 Exhibition View, So Near So Far, BB&M, Seoul, 2024 (제공: BB&M)


<So Near So Far>는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인 작가가 기타를 직접 치며 수집한 자신의 뇌파 데이터를 새로운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 과정을 4분 남짓 영상에 담아냈다. 이번에 공개한 신작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 닐 영(Neil Young)의 <Heart of Gold>,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Space Oddity> 등 시대를 풍미한 팝송을 바탕으로 한다. 보편적으로 울림을 주는 대중음악을 활용한 표현 방식은 1980-90년대 가요를 깨진 술병 조각, 알약 등으로 악보로 그려내고 적어 내려간 작가의 초기 <유행가> 연작과도 맞닿아 있다. “시각 예술이 다른 문화영역과 분리돼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작가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팝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곡들을 현재로 소환시켰다. 1969년생인 작가가 청년기 자주 드나들던 청계천 노점상에서 처음 접한, 문화격동기를 겪은 동 세대에게 각별한 추억으로 남은 전설적인 곡들을 EEG 센서에 스스로를 연결한 채 연주하는 모습이 갓 내린 눈으로 뒤덮인 산의 풍경과 중첩된다.


전시 전경 Exhibition View, So Near So Far, BB&M, Seoul, 2024 (제공: BB&M)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산수화에 개념을 더한 “관념산수”로 마음 풍경을 시각화하기 위해 뇌파를 도입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오토누미나(Autonumina)’ 개인전에서 작가는 자신의 뇌전도 그래프가 감정 기복에 파동 치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연상된 이미지를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그림, 조각, 설치 작품으로 풀어냈다. ‘스스로 찾아내는 경건함’이라는 뜻을 지닌 제목의 개인전에서는 평온한 상태의 뇌파를 3차원 산맥 모양으로 재현한 참나무 탁자도 전시되었다. 특히 뇌파의 형상을 좇아 흙 반죽을 재료 삼아 물결치는 능선으로 빚어 내놓았던 고색창연한 청자 오브제 시리즈는 전시장에서 고요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보이지 않는 상상의 풍경이 아닌 실재하는 대상을 단순히 재현한 것이 아니라 회화적으로 재구성해 그리는 진경산수화의 방법론을 닮은 그 기개에 작가가 받았을 감흥이 느껴지는 듯하여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So Near So Far> 영상에서 작가는 열정을 다해 연주하며 느낀 생각, 감정 상태를 변환한 뇌파 데이터를 수집했고, 2D 뇌파를 3차원 부조로 변환해 아크릴 물감과 금박의 능선이 겹쳐 완성한 결과가 <Mindscapes>다. 레코드판 소릿골 굴곡을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카트리지를 거쳐 흘러나오는 소리가 그러하듯 뇌의 신호로 포착한 마음의 주파수는 산과 계곡을 넘나드는 지형도가 되어 한 폭의 “마음 풍경”으로 펼쳐진다.


전시 전경 Exhibition View, So Near So Far, BB&M, Seoul, 2024 (제공: BB&M)


곡 연주 중 다양한 음색이 필요하지만, 기타를 바꾸어 들 여유가 없을 때 다른 음색을 내고자 더블넥 기타를 사용하는 기타리스트처럼 배영환은 때로는 자신의 몸을 던져 뇌파를 책정하고, 그 속에서 심상이라는 진경산수화를 그려내, 일상을 읊는다. 자기 내면, 미래에 대한 의문에 직면한 그 모습은 “우주 탐험 중 궤도를 이탈한 톰 소령”, “금같이 순수한 마음을 찾아 살아온 광부”, “새장 속 주연 대신 전장에 나서기를 택한 당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급변하는 매일을 살아가는 당신 말이다.


장소 BB&M 갤러리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23길 10)

기간 2024.03.21 - 2024.05.04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4.04.08 게재)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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