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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Jun 16. 2024

서로 다른 소리를 하나로 모으다

불완전성에서 찾은 합창의 본질

코러스(chorus)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는 것을 지칭한다. 합창이나 합창단으로 주로 번역하고, 동시에 지르는 함성, 이구동성으로 말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현대 음악에서 구절로서의 코러스는 후렴구로 노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와 감정을 전달하는 핵심 부분을 가리킨다.


<백그라운드 보이스> 전시 전경 Ⓒ 사진 홍철기, 제공 코리아나미술관



사운드 아티스트 전형산 작가가 코리아나미술관 고유의 프로그램인 *c-lab(씨랩)의 일환으로 신작 <백그라운드 보이스>를 공개했다. *c-lab은 2017년 이래 매해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여 작가, 연구자와 함께 탐구하는 '실험의 장'이다. 올해는 '코러스'를 앞세워 불안과 초조함, 피로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불완전하지만 '함께' 소리 내는 우리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예술 경험을 모색한다. 2024 박물관·미술관 주간의 의제인 "교육과 연구를 위한 박물관"에 초점을 맞춰 제작지원을 받은 작가의 이번 신작은 메인 보컬 뒤에서 보조적으로 노래하는 백그라운드 보컬로서 코러스에 주목한다.


<백그라운드 보이스> 전시 전경 Ⓒ 사진 홍철기, 제공 코리아나미술관



"비극은 근원적으로 코러스였다"라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문장이 전시 초반에 관객을 맞이한다. 니체는 삶의 고통과 비장함에서 춤, 음악, 시를 동원해 듣는 이에게 위안을 건넸던 코러스를 진정한 예술로 보았다. 각기 다른 소리와 자아를 지닌 이들이 서로 다른 음역대, 가사를 담당하며 전체적인 음향을 풍부하게 만들고, 각자의 음을 동시에 부르며 조화로운 화음을 자아낸다. 템포와 리듬에 따라 호흡을 내뱉으며 화성으로 켜켜이 채운 풍부한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전형산은 코러스의 본질을 주어진 악보에 충실한 것이 아닌 불완전성에서 찾는다. 합창이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를 서로 다른 음과 시간으로 노래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찾고, 차이가 만들어내는 의미를 발견하는 여정에 관람객을 초대한다. 코리아나미술관 c-cube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면 컴컴한 벽면에 10여 미터에 걸쳐 16개의 스피커가 늘어서 있다. 좌우로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16개의 설치물은 열선풍기를 개조한 스피커이다. 작가는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하는 합창단의 모습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단순히 보고 듣는 것에서 나아가 이곳을 찾은 누구나 '무대'에 구비된 마이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남길 수 있다. 마이크 앞에 있는 페달을 누르면 녹음이 시작되고, 자유롭게 기록한 이 목소리는 코러스의 일부가 된다.


<백그라운드 보이스> 전시 전경 Ⓒ 사진 홍철기, 제공 코리아나미술관


이렇게 현장에서 채집된 목소리는 전시장 중앙에 들어선 식물의 생장, 전력 소비량 계기판 등 정보를 사운드로 변환한 '소리 객체'와 실시간으로 합성되어 비음악적 합창을 이룬다. 내가 무심코 녹음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사운드를 듣는 경험은 꼭 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합창단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전시장의 합창단원들. 그들의 제각기 다양한 모습과 원래 주어진 사물로의 기능이 중첩되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더욱 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만든다. 전시는 "관습이나 틀에서 벗어나 '존재'를 그대로 바라보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하나의 하모니를 이룰 수 있다"고 전한다.


<백그라운드 보이스> 전시 전경 Ⓒ 사진 홍철기, 제공 코리아나미술관


신작 외에도 소음으로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사운드나 사람이 듣지 못하는 전자파의 신호를 들려주는 설치작,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한 작가의 예전 작업도 전시장에 함께 전시되어 관객들에게 몰입할 소리 경험을 선사한다. 전시 종료를 일주일 앞둔 6월 15일(토)에는 전형산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되니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장소 코리아나미술관 c-cube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827 지하 2층)

기간 2024.05.09 - 2024.06.22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4.06.10 게재)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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