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홍길동전을 읽으며 불의에 맞서는 의적이 멋있게 보인적이 있다. 무언가 대리만족 같은 통쾌한 것이 있었다. 아마도 주인공이 차별과 부패에 맞서고 나중에는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것으로 끝나는 유토피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백 년 전에도 부조리한 현실이 있었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당시 이 책을 보았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여기서 비판과 저항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주인공은 차별과 부패를 비판하면서 의적을 일으켜 저항하는 행동에 나섰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지만 결국에는 그 이상을 실현한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한 것이다. 저자 허균은 글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정신을 전했다.
이러한 비판(批判, Critique)과 저항(抵抗, Resistance) 의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예술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방향이 되기도 한다. 비판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의식적인 방향 설정이고 저항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 된다. 그러나 그 비판 또한 직접적인 행동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림을 통해 그 비판과 저항의 모습을 찾아본다. 때로는 비겁해 보이고 때로는 잔악해 보이는 그 작은 틀속의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그 모습과 생각을 담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권력과 정치의 모습이기도 하고 부와 빈곤의 흔적이기도 하며 아픔과 저항의 역사적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생명체 일수 밖에 없다.
세상을 비판하며 의식이 깨어나기를 바랐던 작품들을 보자
피터 브뤼헐의 <맹인의 비유, 1568>는 눈먼이가 눈먼이를 인도하는 풍경으로 줄지어 따라가다 함께 쓰러지는 행열을 통해 무능한 사회지도층과 맹목적인 추종자의 어리석음을 풍자했다. 보면서도 보지 않고 생각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일깨워주는 풍경이다. 윌리엄 호가스의 <방탕한 생활, 1735> 또한 귀족 사회의 도덕적 위선과 타락을 드러낸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조선 후기 민화 <까치호랑이> 역시 권위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우스꽝스럽게 그려 웃음으로 양반과 관료의 위선을 풍자했다. 이렇듯 비판은 이성의 통찰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반면 저항은 격렬한 행동의 표현이다. 곧 시대의 기록이자 증언이기도 하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쟁의 참상, 1810~1820>은 전쟁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전쟁과 권력의 잔혹성을 폭로했다. 또 프랑스의 오노레 도미에는 신문 삽화를 통해 민중의 분노와 정치인의 탐욕과 위선을 풍자하며 예술을 사회적 저항의 도구로 확장시켰다. 우리의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의 벽화나 만장기 또한 억압에 맞서는 저항의 표현이자 외침이었다. 이러한 정신 또한 예술가의 실천적 양심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렇듯 시대의 비판과 저항은 어디에서나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그림은 이미지와 색을 통해 미를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다. 우리 의식이 살아있음을 일깨우는 행동의 표현이다.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순간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풍자와 해학의 그림 속 표현방법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서양에서는 날카로운 풍자를 통해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의미가 크다면 우리의 까치와 호랑이 풍자에서는 웃음을 통해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변화하게 하는 내면의 성찰을 유도했다. 관점의 차이다.
글이던 그림이던 또는 몸짓이든 그 표현은 깨어있는 자의 외침이다. 이러한 비판과 저항의식은 때로 과격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런 비판과 저항 없이 차별과 부패, 권력이라는 거대한 벽을 부수는 일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도 있다. 정당한 비판과 명분 있는 저항정신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근본이다.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만든 원천이다. 2024년 12월, 우리는 다시 그 힘을 경험했다. 명분 있는 분노와 저항이 권력의 부패를 무너뜨리고 우리의 삶을 지켜냈다. 현실을 바꾼 힘이다. 그런 비판과 저항 의식이 살아 있기에 우리는 미래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