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작년에 비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 듯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한 해가 저물어가는 아쉬움을 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올해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일들을 겪었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과 느낌을 세세히 떠올리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나의 세계가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서울에서의 대외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주로 공익적 성격을 띤 활동들로, 흔히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만나기 전에는 그들이 무언가 특별하고 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람 사는 건 결국 다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다만 그들이 말할 때 문장 구사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그 순간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이 때문에 책을 꾸준히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5년 동안 책을 읽는다면 내 사고와 표현 능력이 얼마나 바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올해 새롭게 느낀 점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에게 낯을 가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말을 걸며 전교생과 안면을 텄던 내가 이제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면 상대와 잘 맞는지 아닌지를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올해는 나와 잘 맞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함께 지냈고 안 맞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닫고 외면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먼저 좋아해주고 다가와준 사람들까지도 외면했던 것 같아 미안함과 불편한 감정이 남았다. 이런 방식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내년에는 편견 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INFJ 기질을 타고난 나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좋은 인연을 놓칠까 두려워 한 해가 조금 더 천천히 흘러가길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자연스럽게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으면서도, 거절당할까 봐 겁이 나서 스스로 물러서는 내 모습이 답답하다.
항상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싶어 했고, 쥐어왔던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더욱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이대로라면 좋은 인연을 놓치고 말 것 같아 두렵다.
올해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성장한 해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 순간들이 이제는 더 오래 남고 그 안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극을 받았다. 그 자극은 열등감이나 좌절이 아니라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긍정적인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덕분에 책을 읽기 시작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돌아보게 되었다.
내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함과 걱정이 밀려오지만 인생이란 원래 예측 불가능한 것 아닐까 싶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사람들에게 받은 따뜻함과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시간이었다. 나에게 참 많은 변화와 성장을 가져다준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