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거야 Apr 04. 2023

나의 강아지 1

나의 강아지 1


 오빠는 밥을 먹고 나면 곧바로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면서 밥을 또 얻어먹었다. 그것은 언제나 이웃의 증언에 의해 발각되었는데, “정민이 엄마, 정민이가 우리 집에 왔길래 내가 밥 줬어.”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오빠는 우리 집에서 유명한 돼지였다. 먹보나 뚱땡이라는 의미의 돼지가 아니라, 식탐이 있는 귀여운 아이라는 뜻으로 엄마와 아빠는 사랑스럽게 “돼지야”하고 불렀다.


 우리가 살던 다세대주택의 다른 동의 끝에는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노부부의 집에서도 오빠는 이따금씩 발각되었다. 나도 오빠를 따라 그 노부부의 집에 가고는 했다. 그들은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고 집의 세간 중 무엇을 만져도 혼내지 않았다. 사실 살림살이랄 것이 별로 없기도 했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할아버지의 침대였다. 그 침대는 앉아보면 예상과 다르게 아주 딱딱한 것이었다. 침대는 그저 방보다 더 높게 쌓아 올린 시멘트 덩어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침대를 가지고 있는 집은 많지 않아서 나는 언제나 그 침대가 좋아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에게 사탕이나 젤리 같은 과자도 주었고 이것저것 말을 붙이며 우리가 더 놀다 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는데 엄마는 우리를 찾으러 와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귀찮게 하지 말고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나는 양편의 그 반대되는 견해에 대해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고는 했다.

 무엇보다 내가 그 집을 자꾸 찾는 이유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그 집에 살던 얼룩덜룩한 털을 가진 고양이는 쇠그릇에 담긴 물이나 우유를 홀짝홀짝 핥고 가끔 내 손도 핥았다. 고양이의 혀는 작고 까끌까끌했다. 나는 고양이가 좋아 쫓아다녔지만 고양이는 나를 슬금슬금 피하다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러 가버렸다. 노부부의 집에 다녀오면 나는 엄마에게 고양이가 갖고 싶다고 졸라댔다.

나의 강아지

 그러다 고양이 대신 강아지가 생겼다. 강아지는 나의 집 바로 옆에 작은 집을 얻어 살았다. 물론 그 집은 나의 아빠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강아지 집 앞으로 가서 강아지를 불러냈다. 목줄을 한 황토색 강아지는 기쁘게 나와 내 손 위에 고개를 올려놓고 내 손을 핥았다. 강아지의 혀는 고양이의 혀와는 다르게 더 넓적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강아지의 붙임성과 보드라운 털이 좋았다. 나를 보는 눈과 귀엽게 킁킁거리는 코가 좋았다. 나는 강아지를 무릎 위에서 귀여워해 주고 가슴께로 올려 안아주었다. 강아지도 나를 좋아해 언제나 나를 기다렸다. 강아지는 고양이와는 다르게 먼저 나를 질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아지는 언제까지고 작은 강아지로 있지는 못했다. 개는 사람보다 성장속도가 몇 배나 빨랐다. 나의 강아지는 금세 커버렸고 큰 소리로 짖었다. 털이 빠졌고 제 집의 모퉁이를 정신없이 이빨로 긁었다. 무엇보다 큰 똥을 쌌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너무나 기뻐서 날뛰었는데 너무 정신없이 날뛰다가 제 똥을 밟고 나서 똥 밟은 발을 내 손등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여전히 나의 강아지가 좋았지만 정신없이 내게 달려들어 똥을 묻힐 때는 더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의 강아지는 순식간에 더 자라나서 내 몸만큼 커졌다. 이제 나는 나의 강아지의 흥분을 받아줄 수가 없었다. 나는 강아지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무료함 때문에 밖으로 나온 나는 모처럼 강아지에게 다가갔다. 강아지는 얌전했고 내가 손을 내밀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더니 내 앞으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게 가까워질수록 흥분하기 시작한 강아지는 덮치듯 내 위로 올라타버렸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아빠는 나의 강아지를 밀치며 “이 놈의 똥개가!!” 하고 외쳤다. 나는 개의 힘에 의해 옆으로 넘어졌고 내 몸의 일부에 의해 개의 똥이 뭉개지고 말았다. 그때의 감촉, 냄새, 불쾌함은 나에게 충격적인 경험이 되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나의 개를 똥개로 보기 시작했다. 자기 똥을 피할 줄도 모르고 철퍼덕 철퍼덕 밟아대는 개가 나는 싫어지고 있었다. 내가 개의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외면해 버리자 언제부턴가 개도 나를 반기지 않았다. 어떤 연민에 의해 멀찌감치에서 개를 보면 개는 집 안에서 조금 나오다 말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꼬리는 처져있었지만 꼬리는 다 감추지 못한 기쁨으로 활기차게 왔다 갔다 했다.


 그럴 때 나는 개의 눈을 깊게 바라보았다. 그 눈은 예전의 나의 강아지와 같았다. 깊은 속쌍꺼풀과 속눈썹은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이제 나는 다 커버려 어른이 된 강아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개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와 자신의 사이가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 공주님처럼 안아 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