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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거야 Apr 13. 2023

나의 강아지 2

나의 강아지 2

승훈이네 집

 승훈이의 집에는 커다란 나무가 많았다. 대문을 열면 나무들이 먼저 보였다. 대문을 지나 정원을 따라 니은 자로 돌면 흰색과 갈색의 직사각형 타일로 마감한 외벽을 가진 1층짜리 집이 있었다. 현관과 창문은 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마당을 가로지르면 나무들의 신록이 싱그러웠다. 그 집에서 놀 때 나는 항상 정원에서 놀았다. 나무들 사이를 지나고 푹신한 땅 위에 떨어진 나뭇잎을 가만히 구경했다. 뒷마당에는 커다란 은행나무와 잣나무가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가을이면 낙엽들을 모아 태우는 냄새가 구수했던 승훈이의 집을 나는 정말로 좋아했다. 마당 한 편에는 승훈이를 위해 마련해 놓은 전용 화장실이 있었는데 승훈이가 갇힌 화장실에서 볼 일 보는 것을 무서워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구덩이를 파 놓은 곳에 불과했지만 승훈이의 아빠는 매일 어제의 구덩이를 메우고 오늘의 구덩이를 파야했다. 


 승훈이네 집에는 삼촌도 함께 살고 있었다. 삼촌은 내게 친절한 편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승훈이 삼촌이 꺼려졌다. 웃통을 훌렁 벗어던져 버리거나 팬티만 입고 집을 활보했기 때문이었고 짜증을 내다가 금세 아무렇지 않아 하는 모습이 믿음직하지 않았다. 어느 날 승훈이와 승훈이의 누나랑 셋이서 놀고 들어 왔는데 삼촌이 무척 화를 내고 있었다. 삼촌은 조바심을 내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는데 손놀림과 발놀림이 점점 거칠어지더니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는데 삼촌이 나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너 여기 있는 금반지 가지고 갔어?” 


삼촌이 내게 물었다.


 나는 그 기에 눌려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삼촌은 다시 한번,


 “너 여기 금반지 있는 거 알았잖아. 네가 가지고 간 거 아니야?” 


하고 확인했다. 


 삼촌의 눈은 이미 나를 도둑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이 무서웠다. 그 눈은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릴 것 같은 눈이었다. 삼촌은 금반지를 거실의 괘종시계 안에 넣어 놓고 다녔다. 길고 커다란 시계의 유리문은 열리는 것이었고 괘종과 시계 사이에는 딱 반지를 놓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있었다. 언젠가 삼촌이 반지를 꺼내 닦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삼촌은 나를 의식하면서 반지를 다시 집어넣었었다. 금반지를 넣던 삼촌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 삼촌이 나에게 


“이거 가져가면 안 돼.” 


하고 겁을 주었었다. 


 나는 금반지가 무엇이고 그 가치가 어떠한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과 그래서 삼촌이 무척 아낀다는 것만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괘종시계의 문을 열어 보지 않았다. 


그러나 삼촌의 그 눈은 


내게 이 문을 열어보지 않았냐고, 


너는 충분히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증이 없었기 때문에 더 다그치지는 못했지만 나는 충분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승훈이 집에서 나왔다. 나는 그 후로 승훈이 집에 가지 않았다. 떳떳하냐 떳떳하지 않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승훈이 집에는 나의 진실을 믿어 주지 않는 그 눈이 있는 것이었다. 그 눈은 어린 나의 진실 같은 것은 얼마든지 묵살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내가 의심받았던 사실을, 그 무서운 눈에 대해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나는 여전한 나로 우리 집에서 존재했지만 내 세계 어딘가에 있는 공포가 나로 그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야기가 가족들에게 전해지고 일이 커지는 순간, 가족들조차도 캐묻고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말해보라고 할 것 같았다. 엄마나 아빠가 승훈이의 삼촌과 같은 눈으로 나를 볼 것만 같았다. 이것은 내가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다. 내가 가족들을 믿느냐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힘에 대한 얘기다. 나에게는 나를 증명할 힘이 없었고 어른들의 집요한 짐작은 그 하나로 어린 나의 세계를 바꿔버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유약한 존재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의 개는 이제 내가 지나가면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갸웃하면서 눈으로 나를 좇았지만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나의 개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순식간에 나의 개를 똥개로 보기 시작했을 때 자신의 세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개는 나와 마찬가지로 유약했고 우리는 애착을 형성한 이의 눈빛만으로 존재가 달라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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