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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Apr 20. 2024

Z2의 일상

그 동굴에는 공포가 살고 있다고 했다. 동굴 끝에 다다르기 전에 사람들은 모두 자욱한 증기를 마주쳤고, 도망치는 데 성공한 이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근원적인 공포가 현실이 되는 것을 봤다고 했다.


A는 자살하고 싶었다. 그래서 동굴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동굴 속에서, A는 자기 목을 양 손으로 들고 있는 자기 자신을 봤다. 목은 무언가에 소스라치게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으며 동공도 열려 있었다. 그러나 목 잘린 A는 그저 오도카니 서 있을 뿐,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마주 보다가, A는 천천히 뒤로 돌아 집으로 왔다. 어깨 너머로 힐끔 힐끔 보이는 자신의 목은 얌전했다. 집으로 돌아온 A는, 이것이 자신의 근원적인 공포라는 것이 의아했다.


다음 날, A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동굴로 걸어들어갔다. 동굴 끝에 다다르기 전에, A는 자욱한 증기를 마주쳤다. A는 자신의 근원적인 공포였어야 하는, 목 잘린 자신을 다시 한 번 마주했다. 전혀 무섭지 않았다.


“이게 내 근원적 공포일 리가 없어”


A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목 잘린 자신을 지나쳐, 증기 속으로 더욱 깊게 들어갔다.


A의 목이 잘리고, 떨어졌다. A는, 혹은 A였던 것은, 떨어지는 목을 잡으려 두 손을 뻗었다. 양 손에 목이 와서 잡히는 느낌이 났다. A였던 것은 잘린 목을 소중하게 들고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리고 A였던 것은 보았다 - 자신이 지나쳐 온 A의 근원적인 공포가 잘린 목을 다시 붙이는 것을. 목이 붙은 A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굴에서 뛰쳐 나갔고, A였던 목은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이 크게 뜨였다.


A였던 목은 그저 오도카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A는, 이것이 자신의 근원적인 공포라는 것이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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