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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Jul 30. 2023

0.5


착한 친구들하고 술 먹으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들을 늘어놓고, 오늘도 집에 반쯤 비참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나는 으레 뛰러 나간다 - 이런 가학적인 버르장머리를 언젠가는 고쳐야 할 텐데.


요즘은 자다가 1~2시간에 한 번씩 깨곤 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면 머리가 아프다. 그러면 일을 한다. 일을 하면 머리가 아프지 않아진다. 그러면 다시 잔다. 요즘은 자다가 1~2시간에 한 번씩 깨곤 한다. 그러면 머리가 다시 아프다. 이런 가학적인 버르장머리를 언젠가는 고쳐야 할 텐데, 라며 나는 반쯤 비참한 기분이 된다. 


나는 으레 뛰러 나간다. 새벽 1시에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행인들도, 다들 흥겨웠다. 동시에 나는 비참한 기분이었다. 5.6마일쯤에서, 왼쪽 종아리에 쥐가 올라왔다. 나는 나쁘고 모자란 최악의 인간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마침 허드슨 강가에는 그쯤부터 음수대가 없어진다. 다음부턴 센트럴파크를 달리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6.6마일, 가져온 물을 다 마셨을 때쯤, 달큰하고 뻑뻑한 에너지젤을 목으로 넘겼다. 돌아오는 길, 8마일 쯤에서는 오른 종아리에 쥐가 올라왔다. 슬슬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으어눠울너아러 뭐 그런 웅얼거림으로, 악 물었다고 생각하지만 벌린 채 헐떡거리는 입술과 숨결들 그 타이트한 밴드갭 사이로 흘러나온다. 9.9마일, 에너지젤을 하나 더 목으로 넘긴다. 그러면 마침내 음수대가 보인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물을 받아서 3마일여를 마저 달렸다. 허리, 엉덩이, 무릎, 다리, 햄스트링이 차례로 삐걱거린다. 나는 이 글을 그런 마지막 1.2마일에서 쓰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약간의 해부학을, 나는 언제나 통증으로 배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 아직 머리가 아파서. 착한 친구들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어봐주곤 한다. 나는 잠들 수 있는 피로가 절실했다 - 늘 불면과 기면 그 사이를 오갔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밖에는 없다고 말하면 오만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 같아서, 나는 좋은 대답을 할 수가 없어진다. 그래서 전진하고 있다는 증명이 나는 언제나 필요했다 - 나를 망가뜨리고 부러뜨리려는 나의 모든 불분명한 시도들 때문에. 그래서 달리고 왔다. 그것이 어느덧 마라톤의 반절이나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지, 오늘 달린 거리는 하프 마라톤, 그래서 나는 반쯤 마저 비참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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