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생 Nov 16. 2021

동네 시끄럽게 싸우던 젊은 부부

'화'에 관하여



일요일 오후, 빨래를 널다가 밖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집에서 2,30m 정도 되는 제법 가까운 거리였는데, 길 한 중간에서 30대 중후반 정도 돼 보이는 부부가 싸우고 있었다. 꽤 큰소리로 다투고 있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 그 내용이 나에게 전부 들릴 정도였다. 빨래를 마저 널고, 어떤 상황인가 유심히 봤다. 


배달일을 하는 듯 헬멧을 쓰고 있던 남편, 목소리 높여 화를 내고 있던 아내 

그리고 그 옆에는 대여섯 정도의 여자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혼자서만 아이를 돌보고, 가정은 책임지지 않는 남편에게 온갖 울분을 토해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 네가 데려가서 혼자 키우던가"라는 말을 할 정도로 둘 사이의 염증이 곪아있었던 것 같았다. 남편은 그래도 맞받아치지 않고 우는 아내를 달래주었고 얼마 안 가 상황은 마무리됐다.



그 단편적인 한 상황을 지켜보며, 떠오른 여러 가지 것들 때문에 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아내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울분을 토할까. 부모가 싸우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아이는 얼마나 무섭고 힘들까. 그 상황에서 고개만 숙이고 있던 남편의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그래도 최소한 아이가 없는 곳에서 싸워야 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며 큰 아이에게는 차라리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나을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대미지를 입게 된다.  정말 금액으로 환산하기 힘든 치명적인 영향이 아이의 뇌 속 깊이 자리 잡는다. 하지만, 그저 우리 눈에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많은 부부들이 이를 간과한다. 부모가 싸울 때마다 아이가 담배를 피운다면, 누구라도 기겁을 하고 싸움을 멈추지 않을까.


그 부부 싸움 중, 화를 내던 엄마 손을 잡고 비명을 계속 지르던 그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부싸움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사실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 정도를 정확히 모를 뿐이다. 그뿐만인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열을 내며 싸움을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은 스스로의 건강까지 아주 효과적으로 악화시킨다. 그럼에도 우리는 화를 참지 못하고, 누군가와 싸운다.


화가 없는 세상은 낭만일 뿐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입김을 불어 넣고 싶었기에 화에 관한 내 고찰을 써보려고 한다.



왜 우리는 화를 낼까?


나는 지난 6년간 단 한 번도 이성의 끈을 놓고 목소리 높여 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환경이 완벽히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 완벽한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은 했지만, 사람들과 의견 차이가 생기는 경우는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다투지 않았고, 오히려 의견 차이가 있을 때마다 상대방과 대화로 풀며 관계가 더 좋아졌다. 그렇게 긴 시간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솔직히 이제는 정말 화내는 방법을 잊은 것 같다.


그 밑바탕에는 3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1. 화를 내는 것은 내 욕구 분출만을 위한 행동일 뿐이다.


인간은 화를 분출함으로써 누군가의 기를 꺾어 내가 우위에 설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상대를 이겼다는 성취감과 억누르고 있던 화를 표출함으로써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뇌 전체를 적신다. 이것 또한 상당히 중독성이 있는 쾌락 유형 중 하나이다. 때문에 '화내는 것'이 습관이 되고, 중독적으로 싸움을 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


하지만 그렇게 화를 표출한 이후 상황은 어떠한가? 거의 모든 경우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만 될 뿐이다. 당장 눈앞에 있던 일은 잘 처리될 수 있어도, 인간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버려서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있게 된다. 그 어떤 사람들과 정서적인 유대를 맺지 못하고, 건전하게 인정받기 힘들어진다. 때문에 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더 사람들을 억누르고 화를 내며 우위를 점하려 한다.


조금만 앞선 미래를 생각한다면, '화를 내는 것'은 정말 쓸 데 없는 행동이다. 혼자 살아도 정말 괜찮은 돌연변이가 아닌 이상, 인간은 누구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화를 낼 때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 조차 떠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높아진다. 그걸 생각한다면, 함부로 화를 내긴 어려워질 것이다.


아이들은 당장 눈앞에 달콤한 과자가 있을 때 참지 못하고 먹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짜 어른이라면, 자신의 미래 건강과 혹시 모르는 상황을 생각하며 과자를 먹지 않고 참을 수 있다. 욕구가 생겼다고 상황 생각 안 하고 바로 배출해버리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2. 자존심은 생각보다 쓸데없다.


아무리 차분하고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꼭 내 신경을 건드는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잘난 모습을 보고 열등감을 느끼거나, 혹은 반대되는 의견을 펼친다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안 좋아져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승부를 걸어오는 것이다.


그런 싸움꾼 들은 정도가 심해지면 날 짓밟아 올라가려 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나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때 이 사람의 행동에 분노를 느껴 똑같이 화를 내는 것은 정말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고찰해보면, 정말 유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부에서 꼭 이기려고 하고', '내가 잘 낫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한다' 이걸 가장 많이 하는 유형의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바로 미취학 아동들이다.



5살짜리 꼬마애와 술래잡기를 하는데, 진심을 다해 이기려는 어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냥 아이와 적당히 놀아주다가 잡혀주고, 아이를 잡아도 일부러 놓쳐준다. 자신에게 유리한 룰을 즉석으로 만들어 게임을 지속하려는 억지를 부려도 귀엽게 봐준다. 아이가 이기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때 아이와의 승부에서 졌다고 해서 진심으로 화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이와의 승부에서 진다고 해서 내가 진짜 지는 것도 아니고, 무시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린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승부에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으로 싸우려고 하는 사람은 비슷한 또래의 아동들 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정말 별것도 아닌 것으로 승부를 걸어오는 사람들의 수준도 사실 이와 같다. 언어와 상황만 어른들의 환경으로 맞춰졌을 뿐이다. 아이와의 술래잡기에서 진다고 우리가 아무런 타격이 없는 것처럼, 일상에서 별것도 아닌 것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에겐 그냥 져주면 된다. 실제로 정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남들보다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아 자제력이 부족한 아이들처럼 당장 본인이 느끼는 불안과 열등감, 분노를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그냥 몸만 큰 아이라고 생각하고 장단에 맞춰주기만 하면 된다. 아이에게 자존심을 새우는 어른이 추해 보이듯, 그런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자존심을 새우는 것도 멀리서 보면 상당히 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공격적인 행동이 과거엔 이해할 수 없어서 나 역시 같이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욕구가 왜 발현되는지,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화가 생기지 않게 됐다. 고양이한테 펀치를 당해도 분노가 생기지 않듯 말이다. 이제는 그런 상황을 겪게 되면, 오히려 관심 있게 더 그 사람을 관찰하곤 한다.




3. 나는 '대화'를 할 줄 몰랐었다.


싸움의 불씨는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불씨를 화재로 번지게 하는 것이 바로 '상대 감정을 존중해주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만 있다면, 우리는 차분한 대화만으로도 갈등 상황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오히려 상대와 유대가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된다. 


누군가에겐 정말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 내용을 난 몰랐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내 어린 시절 주위엔 진솔하게 대화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의견 차이가 있으면 목소리 높여 싸우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주위엔 그렇게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나는 성인이 된 후 운이 좋게 그런 나를 잘 이끌어주었던 선생님을 만났고, 진짜 대화를 나눠주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는 여러 권의 책을 보며 대화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렇게 성장해 가며 과거의 무지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고, 한편으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대화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대화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누군가에게 진솔한 고민 상담 요청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다면, 당신은 진짜 대화를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의 나처럼 해결만 하려고 하고, 논리만을 내세워 잘잘못만 따지는 식의 대화가 익숙하다면, 하루빨리 대화법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논리만 따지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혼자가 된다.




누군가와 기싸움을 하거나 말다툼을 한 후에 해결도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고 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정말 안 좋아진다. 싸움은 단순히 싸우는 순간에만 그치지 않고 정말 긴 시간 우리를 괴롭힌다. 덕분에 생산성도 낮아지고, 창의력도 떨어지고, 우울감이 높아지고, 트라우마까지 생길 수 있다.



난 내 시간과 컨디션의 가치가 정말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웬만한 상황에서는 날 이기려는 상대가 있다면 기꺼이 져준다. 그들과 엮여서 벌어지는 이후 상황은 생각만 해도 피곤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내가 싸움에 진심으로 임하여 결국 이기더라도 감정과 시간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무조건 손해라고 느낀다.



때문에 난 피할 수 있는 싸움은 대부분 피하고, 가족이나 연인처럼 피할 수 없는 상대와 갈등이 생겼을 때는, 진심을 담아 내가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상황을 지혜롭게 해쳐나가려 노력한다. 그러나 아직도 스스로에게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낀다. 얼른 책 한 장 더 읽으러 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누구나 쉽게 10% 수준 재능 갖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