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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Oct 22. 2023

비로봉 가는 길

오대산 산행기

자동차 불빛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채 거대한 물결을 이.

"저 많은 차들 어디로 가 걸까." 금증생기지만 토요일 새벽 영동고속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티오프(tee off) 시간에 지 않으려 서두르는 프로님, 단풍놀이 등산, 마다 각자의 목적지를 해 달는 차량다.


설이나 추석 때는 으래 히고, 여름휴가 때는 서객, 겨울에 스키장 가는 사람, 벌초러 가는 효자(孝子)들, 심지어 '김장 시즌'이 되면 김장하러 오가는 차량때문에 고속도로 교통량이 늘어난다.

이처럼 고속도로는 우리 일상에 따라 막혔다 뚫렸다를 반복한다. 더군다나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곳에 사는 나 같은 사람은 막히는 날시간대에 대해 민감하다오늘은 나도 새벽을 달리는 차량 물결에 편승하여 동쪽으로 향한다.


주말에 영동고속도를 가는 날은 기분다. 이 시간에 고속도로를 달린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기 때문이다.


단풍으로 물든 오대산을 상상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횡성휴게소에 든다. 차에서 내리니 겨울 같은 찬 기운이 확 느껴진다. 가을을 느끼기도 전에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강원도에 올 때면 늘 이곳에 들른다. 내연기관 특유의 운전 재미를 느끼며  고갯길을 오르 나면 왠지 휴게소에 들러야 할 것 같은 의무감생긴다.

갑자기 고도가 높아지면서 본격적으로 강원도 땅에 들어선 느낌받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경부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안성휴게소, 서해안고속도로에서는 행담도휴게소, 평택제천노선 탈 때는 천등산휴게소에 들러 화장실 다녀오고 커피 한 잔 하는 게 나만의 루틴이다.


승용차가 진부 IC를 빠져나와 오대산 방향으로 향한다. 산 가까이 오니 이미 도로에 긴 줄이 만들어졌다. 오늘 같은 날은 하루 방문객이 몇 만 명에 이르니 일찍 나서지 않으면 산 아래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다.


도로 옆 밭에당근을 수확하는 모습이 보이고, 길가에 늘어선 농산물 판매점에는 포터 한가득 실고 온 고랭지 무를 좌판 위에 쌓으며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단풍구경을 위해 긴 행렬을 이룬 자동차들이 서로 대조적이다. 오대산 구역 내로 접어들고 계곡을 따라 상원사 방향으로 향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선재길'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아직은 괜찮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인산인해를 이루며 마주 오는 사람 피하느라 아주 힘들어질 것이다.

선재길

선재길은 계곡을 따라 9Km 정도 길게 이어진다. 계곡 단풍이 아직 절정은 아니지만 보기 좋게 물들었다. 오늘 같은 날은 차를 운전하며 계곡 단풍을 구경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차가 없던 시절에는 외부와 왕래가 쉽지 않을 정도로 골이 깊은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오대산 사고(史庫)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외부인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교통지시봉을 든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갑자기 나타나 차를 가로막는다. '더 올라가면 주차할 곳이 없으니 이곳에 세우고 가세요'라고 안내한다. "아니 벌써? 아직 2KM는 족히 더 가야 하는데...."

차 세울 곳 없다 하니 어쩔 도리 없이 도로 가에 차를 세운다.

30분 가까이 걸어 상원사 입구에 도착한다. 몰려든 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대목 맞은 택시는 손님들 실어 나르느라 정신없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오대산 최고봉인 비로봉에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라서 등산객들이 이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오대산은 가을이나 겨울에 인기가 많다. 단풍이 좋고 설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등산로 입구로 발길을 옮기니 관대걸이를 제일 먼저 만난다. 세조가 계곡에서 목욕할 때 관대를 걸었던 곳이라고 한다. 몸에 난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세조가 상원사에 들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속리산에서도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봐서 세조는 피부병으로 고생을 많이 한 왕인 듯싶다.

관대걸이

한참을 더 오르니 포장길이 끝나고 본격적인 언덕길로 접어든다. 중대사자암 기와지붕 위로 단풍이 곱게 물든 모습이 아름답다. 겨울에는 지붕 건너편으로 보이는 설경이 참 멋진 곳이다. 경사진 곳에 세워진 특색 있는 사찰인 탓에 지나는 산객들의 발길을 잡는 곳이다

중대사자암

사찰옆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또 오른다 계단을 따라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불경 외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산길을 따라 석등처럼 설치된 특이한 스피커가 적멸보궁까지 이어진다.


잘 다듬어진 계단이 끝나고 적멸보궁 옆으로 난 흙길을 따라 비로봉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가팔라진다. 해발고도 1100M를 넘었으니, 400미터 정도만 고도를 올리면 정상에 이를 수 있다. 고도가 높아지며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구름 사이로 햇볕이 날 때는 온기가 돈다.

건너편 능선으로 하얗게 눈 내린 모습이 보인다. 많지는 않지만 올해 첫눈이다. 단풍구경 왔다가 첫눈까지 경험하는 행운이 있는 날이다. 얼른 정상에 올라 첫눈을 밟아 보고 싶지만 산행 속도가 예전 같지 않은 게 아쉽다.


쉬다 가다를 몇 번 반복하고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다. 1563미터 오대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 이름도 찬란한 "비로봉"이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라서 바닥에 눈이 없지만, 능선을 따라 북쪽 사면에 눈이 남아있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은 한겨울 상고대 같고, 어찌 보면 나뭇가지에 하얀 설탕을 잔뜩 뿌려 놓은 것처럼 보다. "저 아래는 단풍구경, 꼭대기에 올라서는 눈 구경을 하는구나...." 이럴 때 '일타 이피'라는 말이 잘 어울듯 싶다.


정상석 앞으로 인증사진 찍으려는 산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정상에 오르면 숙제하듯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게 일반적인 산행의 정석이다. 그 사으로 주변 사람들에 자랑하고, 스스로 해냈다는 뿌듯함을 오래도록 간다.


우리나라 명산 중 비로봉(毗盧峯)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많다. 소백산 비로봉, 속리산 비로봉, 팔공산 비로봉, 북한에 있는 금강산과 묘향산 최고봉도 비로봉이다. 어찌하여 비로봉이란 이름이 이리도 많을까.


'비로'라는 단어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비로(毘盧)는 산스크리트 어로 '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뜻으로  동아시아, 네팔, 티베트 등지의 대승불교권에서 널리 숭배되는 최고의 부처를 말한다.


시월 어느 토요일 비로봉에 올라 세상을 두루 밝히는 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을 만났고, 가을 하늘 아래 첫눈을 봤고,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눈호강까지 했다네....

정상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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