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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일 Aug 18. 2024

닭발산

계족산 산행기

계족산은 닭발산다.

산 모양이 닭발을 닮았고, 한자로 닭계(鷄) 발족(足) 자를 쓰기 때문이다.

닭은 12 간지 중 10번째 동물이고, 태고적부터 인간과 함께하며 계란까지 선물한다. 조금 유머러스 한 비유이긴 하지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동트는 새벽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시계 역할도 했으니, 우리에겐 꼭 필요한 가축이었다. 


닭은 사시사철 맨발로 다니지만 동상이나 무좀에 걸리지 않다. 음부터 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었다.

강아지에게 신발 신 모습 가끔 눈에 띄지만, 그런 광경을 볼 때면 "강아지도 애초부터 맨발로 다니도록 태어난 동물일 텐데...." 라는 생각 들게 된다. 


오래전 나이키가 아프리카에서 신발 팔아먹는 마케팅 방법에 대해 들은 이 있다. 처음엔 맨발로 니는 원주민들에게 신발을 공짜로 나눠준다 한다.

신발을 신면 발바닥에 굳은살이 없어지고 피부가 얇아져, 결국 신발 없이는 다닐 수 없게 되고, 그들도 신발은 구매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럼 인간의 발은 어떤 존재로 태어났을까. 원시시대에는 모두가 벌거벗은 상태로 살았겠지만, 적어도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후로 신발을 신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맨발 걷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 소문난 맨발 걷기 명소가 여러 곳 있지만, 그중에서도 계족산 황톳길을 으뜸으로 친다.

최근 '월간  8월호'에 맨발 걷기 명소와 맨발 걷기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는 사례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됐다. 맨발 걷기가 혈액순환 개선수면 질을 높이는 데 효과가 좋다극찬었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도 그 기사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이 더위에 나 말고 또 몇이나 올까." 생각했었지만, 막상 와보니 주차장이 꽉 찼고 주변에도 차 세울 공간이 없는 상황이다.


도로 한 귀퉁이 빈자리를 찾아 간신히 차를 세우고 황톳길 입구 쪽으로 향한다.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좁은 길 양쪽으로 소주 광고 현수막이 여러 개 눈에 띈다. 산에서는 음주를 못하도록 단속하는 게 일반적인데, 희한하게도 술 광고가 많다.

황톳길 입구에 이르니, 여느 산과 다른 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등산로 입구에 신발장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이 수도꼭지를 하나씩 끼고 앉아 발을 씻고 있다.

아마도 저 신발들은 황톳길 걷기를 떠난 사람들 신발일 것이고, 수도꼭지 앞에 앉은 사람들은 걷기를 마친 사람들로 생각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프리카 원주민들 처럼 맨발로 다닌다. 이곳에선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분위기다.


신발을 벗어 들고 고운 황토를 살며시 다. 처음 경험해 보는 새로운 촉감이 발바닥전해진다.

볕에 바짝 달궈진 해수욕장 모래 밟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촉촉함이 발바닥으로 스며들고, 찌릿찌릿한 간질거림이 허벅다리를 지나 구리까지 살살 긁어준다.

"발바닥이 얇아서일까. 맨발 산행이 처음인지라 그런걸까."다른 사람들은 잘도 걷는데, 나는 걸음걸이가 늦다.


더디거나 말거나, 온몸이 간질간질해지는 오묘한 전율을 느끼며, 황토를 음미하듯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걷는다.

진흙황톳길

황토에 물 뿌려진 상태로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바닥이 반들반들 해진 구간이 나타난다. 방심하면 훌러덩 자빠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조금 더 걸으니 물기를 잔뜩 먹은 진흙길이 이어진다. 도자기 빚을 때 찰흙을 맨발로 꾹꾹 밟아 가며 치댄 것처럼 수많은 발자국이 박힌 황톳길이다.


참! 특이하고 신비로운 길이다.


중간중간에 황톳길 보수용으로 쌓아놓은 황토 무더기가 보인다. 황토 무더기 흙을 이용하여 만든 예술작품이 시선을 끈다. 겨울 눈축제 때 쌓인 눈을 조각하여 작품을 만든 것처럼 누군가 진흙 더미를 이용하여 앙증맞은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 황톳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건강 그리고 멋진 추억까지 선사하는 대한민국 대표 명품 길임에 틀림없다.

짧은 거리도 아니고 14.5km에 이르는 거리를 왜 이토록 정성 들여 만들었단 말인가. 궁금증이 생길 때쯤 황톳길이 만들어진 사연 눈에 띈다.


2006년 4월 어느 날 가까운 지인들과 계족산을 찾았다가 하이힐은 신고 온 여성에게 운동화를 벗어주고 돌길을 맨발로 걷게 된 선양소주 조웅래 회장.... 그날 꿀잠을 조회장은 맨발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맨발의 즐거움을 나눠보자 라는 생각에 14.5km 임도에 좋은 황토를 깔기 시작했다"이야기가 적혀 있다.

"아!  입구에 소주 광고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었던 게 바로 그런 이유였군...."  이 길을 만드신 분이 대전, 충남지역에 기반을 둔 소주회사 회장님이셨다.


발바닥이 화끈거릴 때쯤 세족용 수도가 나타나고, 수돗가걸터앉아 발을 씻고 신발을 신는다.

이제 황톳길은 그만 걷고 계족산성으로 올라갈 생각이다. 데크길을 따라가니 황톳길 달리 더위가 확 몰려온다.

땀으로 등이 흠뻑 젖을 때쯤 계족산성으로 이어지는 임도 숲길에 이른다.

여기서 계단을 통해서 700미터 정도 더 오르면 계족산성에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산성 보수공사 중이라 갈 수 없다" 현수막이 앞을 가로막는다.


"계족산성에 오르면 대청호와 대전시내 경치를 볼 수 있을 텐데...."

막히는 고속도로를 지나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아쉽지만 "이 더위엔 안 가는 게 낫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임도 귀퉁이에 놓인 벤치에 앉아 시원한 얼음물로 목을 적신다.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잠시 여유를 가진다. 땀이 마를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래로 향한다. 이번엔 계단이 아닌 임도를 따라 걷는다. 내리막길이라 조금이나마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다.


황톳길 초입 무른 흙과 달리 이곳은 딱딱하고 거칠다. 물을 뿌린 지 오래됐고, 건조한 날씨 탓에 황토가 딱딱해진 것으로 보인다.

S라인 황톳길

길바닥은 아래쪽 보다 못하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고 호젓하고 운치 있는 산길 같은 구간이다. 14.5km 전체를 돌아보기 부담된다면 여기까지만 와도 계족산 황톳길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계족산 우체통 근처까지 내려오니, 다시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를 기점으로 위쪽은 건조하고 한적한 황톳길, 아래쪽은 질척한 황토에 인파로 붐비는 길,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아! 그런데 저건 또 뭔가.

닭을 애완견처럼 몰고 가는 분이 있다. 가늘고 긴 막대기 하나로 닭 꽁무니를 툭툭 치면서 닭을 몰고 있다.

너무 신기한 모습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진 찍느라 바쁘다. 닭을 데리고 이곳에 자주 오시는 분 같은데, 닭이 주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혼잣말을 하시며 이리저리 몰고 있다.  


설마 닭이 사람 말을 알아들으랴마는 그 모습이 하도 기이하여 핸드폰 카메에 담아본다.

계족산 홍보를 위해 누군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상황인지, 정말로 닭 주인이 매일 닭과 함께 산책을 하시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닭발과 잘 어울리는 흥미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무더운 여름날 계족산에 가면 살아있는 닭발을  수 있다.

계족산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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