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카페에 갔다. 회사까지 가는 길목에 있는, 늘 가던 그 프랜차이즈 카페. 몸이 먼저 들어가고, 마음은 나중에 따라붙는다. 출근이라는 건, 어쩌면 ‘나를 밀어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입구에 들어서자 달달한 시럽 향과 분주한 직원들의 목소리가 나를 일상의 흐름 속으로 집어넣는다. 주문을 기다리며 나는 텀블러가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다.
없다.
오늘도 없다.
텀블러는 분명 집에 있었다. 씻어두었던 게 기억난다. 주방 테이블 한쪽에 말라가던 스테인리스 병. 하지만 오늘은, 아침에 그것을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사실은 안 챙긴 게 아니라,
챙기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텀블러를 가방에 넣는 건 생각보다 번거롭다. 씻는 것도 귀찮고, 다 마신 뒤 텀블러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그 무게감도 부담스럽다. 일회용 컵은 비워지면 바로 버릴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손에 남지 않는다.
책임조차도.
커피를 받은 뒤 습관처럼 컵 홀더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손끝이 멈칫했다.
“이거, 꼭 써야 하나?”
“이걸 안 쓰면,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일까?”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이걸 들고 있지?”
잠깐의 고민은 언제나 그렇듯
자기합리화로 끝난다.
“그래도 나는 종이빨대는 안 쓰잖아.”
“비닐봉지는 안 받잖아.”
“일주일에 두세 번은 텀블러도 쓰잖아.”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그리고, 그 모든 ‘합리화’는 ‘이 정도면 괜찮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회사에 도착해서 텅 빈 커피컵을 쓰레기통에 넣으면서 잠시 멈췄다.
‘이건 일반쓰레기인가?
아니면 종이로 버려야 하나?’
하지만 그 고민조차 사치처럼 느껴져서 그냥 가장 가까운 통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이건 버림이 아니라 ‘숨김’이었다.
내가 사용한 물건을 내 눈앞에서 치워버림으로써 나는 책임으로부터 도망쳤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아무 일도 없지는 않았다. 플라스틱 뚜껑은 여전히 어디론가로 간다. 뜨거운 커피에 녹았던 미세한 입자들은 하수구를 타고 흘러가 어딘가에 남는다. 내가 보지 않는 사이, 나는 무언가를 남긴다.
사실 나는 환경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환경을 공부했고, 환경 관련 글을 쓰고, 때론 환경단체에서 일한 적도 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텀블러를 안 가져온 사람.
일회용컵을 아무렇지 않게 버린 사람.
혼자서 “다음엔 꼭 챙겨야지”라고 말하며책상을 정리한 사람.
나는 환경을 말하면서도 그 환경을 가볍게 배신한다. 그리고 그 모순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용서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뿐이라는 말로, 불완전한 선택들을 축소시킨다.
하지만 이런 나도, 아예 무관심한 사람은 아니다. 그건 분명하다. 나는 계속 신경을 쓴다. 그리고 그 ‘신경 씀’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멈추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감각이다.
실은 안다. 이 문제는 개인의 의지로 해결될 수 없다는 걸. 환경문제는 늘 구조적이다. 시민의 실천 이전에, 그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대신, 매장에서 쉽게 다회용컵을 빌려 쓸 수 있다면? 리필이 가능한 소비 구조가 더 일상에 녹아든다면? 환경을 ‘의식’하지 않아도 지구에 덜 해로운 선택을 하게 만드는 디자인이 존재한다면?
그제야 텀블러를 들고 나서지 못한 나를
비난하지 않고도, 다른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 텀블러를 안 가져온 건 나지만, 그게 나의 모든 실패는 아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다시 내일을 생각한다. 내일은 꼭 텀블러를 챙기겠다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다짐을 멈추지 않는 한, 나는 아직 지구를 향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도 메모:
대한민국은 2022년 6월부터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금지 정책을 시행했으나,
사실상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카페는 ‘테이크아웃 형식’으로 규제를 우회 중이다.
매장 내 다회용컵 사용률은 지역·업체별로 크게 차이나며,
소비자 인센티브 정책도 실효성 부족.
제도의 책임은 소비자 개인이 아니라,
‘불편하지 않은 친환경’을 설계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