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제니 Oct 26. 2021

밴쿠버 잡 스토리 1

디시 워셔부터 튀김 요정까지



잡 오퍼를 받았을 때의 내 포지션은 서버였고 매니저와 면접을 본 후 주방으로 들어가 디시 워셔로 시작해 튀김 요정으로 끝났던 나의 밴쿠버 첫 번째 잡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밴쿠버 디시 워셔


나는 한국에서 불법적인 일 빼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었는데 그중에는 식당일도 있었다. 그래서 홀이 아닌 주방으로 들어가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또 스스로 영어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주방이 더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다.


시작은 주방 막내였다. 일명 디시 워셔. 당시 코로나로 인해 식당 내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덕분에 모든 메뉴가 다 TOGO BOX라는 일회용 용기에 담겨 나갔기 때문에 설거지 양이 현저하게 적었다. 얘기를 들어오면 식당을 오픈했을 때에는 디시 워셔라는 포지션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밥을 짓는 일, 밥을 채우는 일, 재료 정리 등 각종 잡일이었다. 디시 워셔로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20kg 이 넘는 쌀을 옮겨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안 생겨서 힘이 약한 나는 쌀을 들지 못해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었다. 게다가 커다란 솥 같은 곳에 밥을 해야 했는데 그 솥이 여간 무거운 게 아니었다. 온 힘을 다해 낑낑 거리며 들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일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나중에는 팔에 근육이 생겨서 거울을 보는데 뿌듯하기도 했다. 그나마 디시 워셔로 일을 할 때에는 마음의 부담이 적었다. 핫푸드 파트나 튀김 파트는 바쁜 시간대에 오더가 밀리지 않게 미친 듯이 오더를 빼야 했는데 디시 워셔는 그런 압박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사실 스시집 주방일은 육체적 노동 강도가 높아 여자가 버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긴 했다. 그래서 대부분은 주방에 남자를 쓰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 가게의 주방에는 1명만 빼놓고 모두 여자였다. 힘의 차이로 인해 남녀가 구분되는 일이 있기는 하다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확실히 힘을 쓰는 일이 많다 보니 버겁긴 했지만 죽어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20kg 이 넘는 쌀포대를 들지 못해서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일이 있을지언정 그렇게 낑낑거리면서도 내가 맡은 바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했다. 그때는 육체적으로 굉장히 지치고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크지 않으니 그래도 버틸만했었다.


문제는 튀김 파트로 넘어가면서 시작되었다.



밴쿠버 튀김 요정


태어나 튀김이라는 것을 한 번도 튀겨본 적이 없었다. 명절 때 명절 음식도 한 번 안 해봤던 내가 180도가 넘는 펄펄 끓는 기름 앞에 서서 튀김을 튀겨야 한다니! 그것도 바쁜 시간대에 오더가 밀리지 않게 튀김 오더로 빼고 스시바로 넘겨줄 튀김도 튀기고 해야 한다니! 솔직히 정말 너무너무너무 하기가 싫었다.


처음 튀김 일을 배울 때에는 뭣도 모르고 펄펄 끓는 기름에 중지 손가락을 푹 담궜었다. 순식간에 '앗! 뜨거!' 하는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딱 그게 다였다. 바로 찬물에 손을 식힌 것도 아니고 약을 바른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러고 다시 튀김을 튀겼다. 그때는 괜찮은 줄 알았다. 어차피 지금껏 그렇게 편한 삶도 아니었잖아? 온갖 산전수전은 다 겪었으니 이 정도 고통은 고통도 아니라고 감히 허세를 부렸던 것도 같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화상을 입은 자리는 물집이 잡혀 계속 부풀어 올랐고 시간이 지나 물집이 터지고 난 후에는 살이 녹아내린 자리에 다시 염증이 차기 시작했다. 왜?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가뜩이나 겨울이라 건조하기도 하고 매일 물에 손을 넣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전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흉은 둘째치고 2차 감염을 일으킬까 무서웠다. 이후에 겁이 나서 조금 제대로 관리를 해주니 상처는 금방 가라앉았다. 지금은 자세히 봐야 보이는 작은 흉터 말고는 말끔하게 나았다.


나에게 튀김 일을 트레이닝했던 또래의 친구는 내가 본인이 가르친 사람들 중 가장 기름을 무서워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나도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얼굴에 잘 티가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멘탈이 와장창 박살 나고 당황스러워 어쩌지를 못하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이 언뜻 보기에 나는 그저 평온해 보인단다. 어쩜 그렇게 차분할 수 있냐면서. 아무튼 나는 그런 사람이라 그 친구도 그렇게 말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내가 보다 빠르게 디시 워셔를 벗어나 튀김 일을 배우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튀김 일은 디시 워셔와는 차원이 달랐다. 무거운 걸 들고 열심히 돌아다녀야 하는 디시 워셔 일 보다는 그냥 제자리에 서서 재료를 준비하고 튀김을 튀기면 되는 일이었지만 둘 중 어떤 일이 더 어렵냐고 묻는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튀김 일이라고 답하겠다. 무엇보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오더를 밀리지 않고 제시간에 딱딱 맞춰 내보낼 자신도 없었고 또 그와 동시에 스시바로 전달해야 할 튀김도 튀겨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사람이 닥치면 한다고 어떻게든 아슬아슬하게 오더를 빼내기는 했는데 그러는 동안 스시바로 전달해야 하는 튀김이 밀려서 스시바의 직원들에게 몇 번 씩이나 혼이 나기도 했다. 게다가 튀김 일은 재료 전쟁이었다. 전날 일한 사람이 제대로 재료를 준비해놓지 않으면 다음날 일을 하는 사람이 2배는 더 힘들게 일을 해야 했는데 그때는 매일매일 너무 바빠서 항상 재료가 간당간당했다.


내가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도 바로 튀김 일 때문이었다. 나는 육체적 스트레스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으며 버틸만한 단단한 사람이 아니었고 결국은 한국행을 결심했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한 지 약 8개월 만에 가게에 노티스를 주고 1년을 다 채우지 못한 내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조금씩 정리했다. 그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 것은 바로 내 생일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튀김 파트로 출근을 했다. 그날은 시작부터 무언가 삐걱거렸다.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영어로 다른 직원을 트레이닝시켜야 했고 그와 동시에 재료가 거의 동이 나서 준비해야 하는 재료의 양도 엄청나게 많았다. 또 그러면서 중간중간 오더도 빼야 했는데 결국은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펑하고 터져버렸다. 오후가 되어 주방 관리자가 출근을 했고 나는 그토록 믿고 따르던 주방 관리자 앞에서 아이처럼 큰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이제 정말 한계라고.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으면 나이가 서른인데도 남들이 다 보는 앞에서 큰소리로 엉엉 우는 게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녀는 나를 다독이며 "네 마음 다 안다, 너는 내색도 잘 안 하는데 그동안 얼마나 마음이 뭉그러졌겠니." 했다. 그 말에 또 설움이 북받쳐서 더 울었다. 이제 다 그만하고 싶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는 것 밖엔 없지 않느냐며 그동안 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다 아시지 않느냐고 그동안 쌓였던 말들을 모두 다 뱉어냈다. 그녀는 다 알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그날은 풀타임 근무를 다 마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짐을 챙겨 가게를 나가면서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허리를 숙여 안녕히 계시라 인사를 했는데 그들은 모두 나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 하며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아마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날이 내가 일을 하는 마지막 날이 될 것임을 직감한 듯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잡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끝이 났다. 돌이켜보면 일을 하는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참 즐거운 일도 많았다. 좋은 사장님과 좋은 코워커들을 만나 일이 힘들었어도 위로받으며 버틸 수 있었다. 끝이 그리 흐지부지 되었지만 그럼에도 사장님과 코워커들은 그동안의 나의 노력을 모두 인정해주었다. 아마 지금 다시 나에게 주방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 하면 절대 못한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그때 주방에서 일을 했던 시간 모두를 마냥 나빴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 한 번쯤은 해볼 만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처럼 나약한 인간도 8개월이라는 시간을 주방에서 버텼으니 혹시나 밴쿠버에서 주방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는 정말 인종차별이 없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