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밴쿠버에서 여행다운 여행 Feat. 남자 친구
솔로 6년, 캐나다 밴쿠버 워킹홀리데이 6개월, 나이 서른, 나에게도 오랜만에 남자 친구가 생겼다. 지인의 모임에서 우연히 남자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지금 그 만남을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부른다. (7개월 차 커플이니 한창 좋을 때라고 봐줬으면 좋겠다.) 사실 글을 쓰기 전에 남자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써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실제로 두어 편 이상의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커플 이야기는 워킹홀리데이와는 별로 연관성이 없지 않나 하는 결론을 내렸고 나는 밴쿠버 섬,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 속에 남자 친구 이야기를 조금씩 녹여보기로 했다.
2021년 3월 캐나다 내에 지역 이동 제한이 내려지기 직전에 남자 친구와 함께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났다. 진짜 날을 잘 잡았지 뭔가. 우리가 딱 다녀오자마자 캐나다 내 지역 이동 제한이 걸려서 지역 이동은 물론 식당들도 다시 오직 포장 오더만 가능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떠나는 날은 날씨가 매우 이상했다. 비가 왔다가 그치고 해가 떴다가 다시 비가 오고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페리에 탑승하기를 기다리며 복권도 사서 긁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그렇게 약 3시간가량을 차 안에서 대기했다. 첫 번째 탑승을 놓치고 두 번째 탑승을 놓치고 마지막 세 번째 탑승까지 놓친다면 남자 친구는 그냥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나도 참 기다리는 거 못하는데 남자 친구는 나보다 더 기다리는 걸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만에 페리에 탑승할 수 있었다. 차를 탄 상태로 배에 탑승하는 건 처음이라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남자 친구는 첫 페리에 탑승하는 장면을 찍으라며 당시 영상을 열심히 찍고 있던 나에게 찍어야 할 포인트를 하나씩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 당시에 찍어두었던 영상의 캡처본이다. 남자 친구는 일 때문에 일과 집 이외에는 어떤 곳에서 가지 못했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먼저 빅토리아 아일랜드 여행을 계획했다. 나로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배를 타고 한참을 달려 드디어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사실 밴쿠버는 딱히 외국 같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운 도시였다. 이전에 말했듯 그냥 서울의 명동 같았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달랐다. 진짜 '아, 여기가 외국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다. 사진을 잘 못 찍는 나도 어디를 찍든 모두 근사한 사진이 되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어찌나 여유로운지 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던 틴에이저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노는 것을 슬쩍 훔쳐보며 나도 덩달아 기분이 들떴다.
밤이 되면 국회의사당 건물에 예쁜 조명도 들어온다. 아마 계절이 여름이나 봄이었다면 부차드 가든 같은 관광지를 구경 갔겠지만 때는 3월 초였기 때문에 춥기도 춥고 아직 꽃도 피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되어 우리는 그냥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다운타운에서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1차를 Chicken wings와 맥주로 간단히 하고 2차를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있는 Earls로 갔다. 여기서 좀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정말 우리를 제외하고 동양인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백인 이외의 인종을 보기가 힘들었다. 거의 대부분이 백인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고 영어를 잘 못 하는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남자 친구와는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Earls에서는 우리 옆자리에 부부로 보이는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남자 친구가 실수로 술을 쏟아서 그걸 보고 있던 옆자리 부부의 남자가 유쾌하게 웃으며 본인이 한 잔 사겠다고 남자 친구에게 술을 권하기도 했다.
빅토리아 아일랜드, 그곳에서는 정말이지 이런 것이 자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늦은 밤 남자 친구와 함께 술이 취해 거리를 마구 뛰어다녔다. 그래도 아무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거리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웃음이 터져서 꺄르르르 넘어가기도 했다.
남자 친구는 나에게 참 좋은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이다. 그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너는 너무 억눌려있다면서 가끔은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또한 불안 회피형에 속하는 나 같은 사람이 안정형인 남자 친구를 만나 '조금'불안 회피형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제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하곤 했는데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할 때마다 그는 내 뒤에서 든든한 내 뒷배가 되어주었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커피를 사들고 피셔맨스와프까지 산책을 했다. 코로나라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가게들이 문을 하나도 열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곳을 걸어 다니며 우리만의 추억을 남겼다.
산책을 끝낸 후엔 같이 브런치를 먹고 박물관을 구경했다. 남자 친구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했으면 하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나는 생애 처음 하는 경험들을 나라는 사람의 메모리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밴쿠버의 섬, 빅토리아 아일랜드 1박 2일 여행은 바다를 보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정말 두 번 다시는 없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나는 다시 한번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방문하고 싶다는 의견을 슬쩍 내비치었으나 남자 친구는 두 번은 가지 않는다며 다음에는 친구들과 가라고 거절했다. 하여간 알 수 없는 사람. 모든 걸 다 해주는 듯하면서도 또 아닌 것 칼같이 탁 잘라낸다. 어쩌면 그게 내 남자 친구가 가진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빅토리아 아일랜드는 우리의 추억이 가득한 곳인데 언제일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한 번 더 방문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1박 2일 여행을 선택했지만 시간을 빡빡하게 잡는다면 당일치기도 가능할 정도로 밴쿠버에서 그리 멀지 않다. 게다가 빅토리아 아일랜드는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하루면 충분히 다 돌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밴쿠버 빅토리아 아일랜드 여행, 완전 완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