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술을 퍼마시고 밤을 새워도 멀쩡하게 아침에 학교를 가던 시절, <아침형 인간> 책이 유행했다. 때마침 게을러지기 딱 좋은 여름 방학이 시작됐다. 방탕한 대학 생활은 그만두고 열심히 살아보자 다짐했다. 알람을 맞추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잠귀가 밝은 나에게 일어나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러나 딱 그만큼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리 강렬하지 않은 햇빛에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첫날이니 잠깐 쉬어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그대로 베개에 머리를 내려놨다. 눈 떠보니 해가 지려한다. 이상한 시간에 잠을 잤더니 깜깜한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 아침형 인간도 아닌 저녁형 인간도 아닌 올빼미형 인간이 돼버렸다. 이럴 땐 차라리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낫다. 잠은 밤에 자는 거라 최면을 걸면서 아침형 인간은 되지 않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서점에 갔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모닝 페이지를 써보라는 책의 조언에 동참해 보기로 했다. 의욕에 불타오르던 첫날 아침 6시에 눈을 뜨자마자 노트를 펼치고 아무 말 대잔치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이 덜 깬 나의 뇌는 아무 생각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다음날 노트를 펼쳐보니 뇌가 없는 사람 같아서 모닝 페이지는 쓰지 않았다.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쓰려고 했던 글이 점점 더 나 자신을 갉아먹는 것 같다며 또다시 빠른 포기를 실천했다.
최근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알게 된 엄마들이 있다. 글쓰기는 미라클 모닝과 원 플러스 원 같은 것일까. 글쓰기는 아침에 잘 된다는 것과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취지로 단톡방도 생겼다. 이번에도 불타오르는 의욕으로 단톡방에 들어갔다. 새벽 6시, 아이들이 자는 동안 까치발로 방에서 빠져나와 따뜻한 차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니 여유로웠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귀신 같이 엄마가 없는 곁을 알아챈 아이들은 하나, 둘 곁으로 오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시간은 개뿔 새벽부터 애들이랑 붙어있었더니 등교할 시간이 다가오자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단톡방에 입장은 했으니 며칠은 버텨보자 마음먹었다. 일찍 일어나야 하니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잠이 청했다. 머리만 대면 자는 나에게 잠이 드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하루하루 노화가 시작되는 만큼 잠의 총량은 줄어드나 보다. 일찍 자니 일찍 눈이 떠진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정도 것이지. 새벽 4시만 되면 눈이 번쩍 뜨인다. 나는 깨달았다. 이런 게 진정한 아침형 인가, 미라클 모닝인 건가.(아침형 인간의 저자는 분명 20대는 아니었을 거라며 뒤늦게 깨달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어둑어둑 한 벽시계가 가리키는 시곗바늘의 인증샷이 꽤 멋졌다. 한동안 인증샷의 노예가 됐다. 단톡방에서의 으쌰으쌰 기운찬 아침 인사도 좋은 채찍질이 됐다. 그러나 일찍 일어난 새는 체력이 약해 먹이를 잡으러 나가보지도 못하고 오후 내내 골골거리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흐리멍덩한 눈을 부릅뜨기 위해 커피만 줄곧 마셔댔다. 이러다간 온몸이 카페인으로 절여진 부작용으로 병이 나던지, 수면 부족으로 쓰러지던지 둘 중 하나였다. 과감히 미라클 모닝과 이별하기로 했다. 여전히 단톡방에서는 아침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화기 애애한 대화들이 오고 가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수밖에 없었다.
미라클 모닝의 인증 노예
요즘은 맘 편히 자고, 맘 편히 먹고, 맘 편히 일어난다. 어차피 아침 일찍 일어나 봤자 애들만 깨우고, 혼자 시간도 못 보낼 것을 괜히 몸만 힘들게 일어나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남들 다 한다고 괜히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일어나는 대신 나만의 바이오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이들 없는 낮 시간에 충분히 먹고, 쉬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밤에는 아이들을 재우고 잠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요즘엔 새벽까지 밤을 지새우며 무언가를 하지 않는 편이다. 아니 못 하는 편이다. 하루하루 노화가 시작되면서 밤을 새울 수가 없다. 삶의 시간은 어떻게든 조화롭게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