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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갈기 좋은날 Oct 26. 2021

명품의 아우라

당신이 걸치는 분위기, 그 가치에 관해 


요즘은 주차장에만 가도 외제차가 즐비하다. 어느 순간부터 외제차 광고는 흔한 일이 되었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명품은 교복처럼 갖춰야 할 스타일이 되었다. 그러나 '루이0똥'은 누구 똥이길래 그리 비싸냐?'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명품의 가격은 지갑을 쉽게 열기 어려운 금액이다. 그나마 보급형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중들에게 높은 가격의 명품은 시각적으로 인식되어있는 디자인이 있다.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그 명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동차의 엠블럼처럼 말이다. 명품에 대한 정보는 경제적 지식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필자는 일례로 벤0의 가격이 알파벳 순으로 높아진다는 것을 듣고 난 뒤, 또 다른 외제차인 아0디의 이야기를 나눌 때 알파벳 A로 시작하길래 가격이 낮은 줄 알았다고 하였더니 필자의 무지함으로 인한 웃음바다가 된 기억이 있다. 아0디는 알파벳이 아니라 숫자로 가격이 높아진다는 사실에 무지했던 연유였다. 물론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지식의 습득이었다. 

   아이가 최근 내게 물었다. "엄마, 비싼데 엄마가 맘에 드는게 있어, 그럼 살거야?" 라고 하길래 "비싸면 조금 고민하겠지?" 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그럼 싼데 이쁘진 않아, 그럼 살거야?"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필자는 잠시 고민했다. "필요하면 살거 같은데"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자 아이는 "그럼 싸고 이뻐, 그리고 사용하기도 좋으면?"이라고 하는 아이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거기서 필자는 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그럼 완전 땡큐지!!!"라고 말이다. 그런 완벽한 물건이 있다니 말이다. 아이는 어떻게 거기까지 질문하게 된 것일까. 내가 너무 비싼 건 안돼라고 강조한 것은 아니었을까...를 반성한 시간이기도 했다. 

  뭔가 가지고 싶은게 있을 때 아이는 내게 가격을 제시하고는 한다. "엄마 이거 사도 돼?"라고 했을 때, 아이가 가끔 골라오는 비싼 가격의 물건은 희소가치가 있는 장난감이 대부분이다. 필자는 "그건 좀 비싼거 같은데, 그게 왜 갖고싶어?" 라고 말하곤 한다. 가계의 경제적 상황도 반영이 되지만 '돈'을 떠나서 가지고 싶다고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가치관도 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비싸다는 말에 의견을 수그러트리고 좀 더 저렴한 물건을 골라오려고 한다. 갖고 싶다는 건 결국 그저 좋아서, 친구 00가 가지고 있어서, 가지고 싶어서 라는 가장 본능적인 이유다. 

  물론 아이가 가지고 싶어하면 사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흔히 유모차는 아이가 타는 건데 엄마가 왜 그 브랜드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서설도 있었다. 비싼 유모차가 가격만큼 실용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싸지 않고 저렴하더라도 실용성이 좋은 유모차도 분명 있다. 그러나 일부 엄마들은 과시하듯 비싼 유모차를 선택한다. 엄마들은 비싼 명품 유모차를 통해 그 경제적 지위라는 분위기를 걸친다. 

   이와 반대로 엄마들 사이에 유행한 것이 있는데, 바로 에코백이다. 에코백은 일회용 봉투의 사용을 줄이는 환경보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가방이었다. 2014년에는 '친환경 가방'으로 순화되었다고 한다. 무지 디자인으로 지극히 실용성에 무게가 실린 가방이다. 무지에 자신만의 취향이 담긴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기도 하고 다양한 업체들은 자신들의 로고를 새겨 친환경 활동에 동참함을 알리기도 했다. 싸고 사용하기도 좋은데 환경에도도움이 되는 완전 '땡큐!'한 가방이었던 것이다. 필자도 에코백이 여러개 있다. 그러나 이 에코백, 즉 친환경 가방이 흔히 말하는 명품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명품'이 될 수는 있다고 필자는 이야기 하고 싶다.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이미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말일 것이다. 여전히 비싼 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경제적 지표에 의한 지위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예술의 가치도 점차 계급경계가 해체되고 대중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장되어 가는 요즘, 예술의 가치 기준이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 역시 재정립되어 가고 있다. 

 무엇이 예술인가 대한 논의는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예술에 대한 논의 중 한 가지인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으로서 미학이 존립해온 것인데 최근 미학의 대체이자 확장으로 부상하는 감성학에 따르면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품보다는 직접 사용하고 걸치고 향유하는 것의 중요함이 주목받고 있다. 바로 '쓸모'의 문제인 것이다. 감성적 예술 기능론적 관점인데, 이는 박성봉의 <감성시대의 미학>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즉 예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부터 쓸모를 찾는다. 예를 들어보자,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가 있다. 그 가보가 시대적으로 어떤 예술사적 가치가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세대를 거쳐 꾸준히 사용되고 이어져 내려온다면 감성학적 측면에서는 일상의 쓸모라는 가치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박물관에서 공공의 감수성을 자극해야 한다는 측면도 분명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일상의 가치가 조명되고 소소한 행복과 개인의 감성적 치유가 중요해지는 시대를 맞아 명품이라는 가치는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몇 백억씩 하는 그림이 우리네 일상과는 괴리감이 있고 몇 천만원씩 하는 명품 가방 역시 우리의 일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분위기나 아우라의 진화에 대한 논의는 한창 뜨겁다. 박성봉에 따르면 "스타일이 취향의 산물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전통적인 예술의 역사는 특정한 취향의 역사이다."라고 하는데, 21C는 개인의 취향이 그 어떤 시대보다 다양화되어 있다. 물론 오징어게임의 성공에 따라 무분별하게 일어나는 오징어게임 굿즈들이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고 있지만 그 주기가 굉장히 짧을 것이고 이러한 현상보다는 개인의 취향이 충분히 존중되어가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자신이 풍기는 분위기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며 자신의 가치기준을 확고히해 나간다면 내가 '명품'이 되는 것은 확정된 미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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