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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갈기 좋은날 Sep 28. 2021

외국어교육을 위한 희생, 어디까지 고민해야 할까

- 전도된 목적의 희생자 '기러기 아빠'에 대한 작은 사색으로부터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가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상을 받았다. 맨부커상은 영국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수상했다는 이 상의 가장 큰 공로는 소설 자체의 힘도 힘이지만 그 힘을 전달한 통역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소통은 중요하다. 한국어로 쓰인 소설을 영어권 나라에 적합하게 해석해준 통역이 없었다면 수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영어’는 필수를 넘어서 제 2의 모국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도 영어는 기본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언어다.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더욱이 한국의 영어 학구열은 말할 것도 없다. 덕분에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기러기 아빠’라는 쓸쓸한 초상이 발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기유학 열풍이 불고 보다 나은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해외로 유학보내기에 급급했다. 문제는 분명한 목표의식 없이 너도 나도 해외로 자식들을 보내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싸여 ‘기러기 아빠’를 자처한 아버지들의 그림자다.

    2021년 현재도 그렇지만 2007년 즈음 ‘기러기 아빠’에 대한 기사들은 기러기 아빠마저도 계급을 나눴는데,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가 풍족해 수시로 해외로 가 가족과 만날 수 있는 아빠는 ‘독수리 아빠’, 1년에 1-2번 정도의 만남이 가능한 아빠는 ‘기러기 아빠’, 한국에서의 삶은 거의 포기한 채 해외로 간 가족들의 ATM기로 전락해 만남도 거의 불가능한 아빠는 ‘펭귄 아빠’로 나뉘었다. 최근에는 해외가 아닌 강남으로 보내는 아빠들을 두고 ‘참새 아빠’라는 로컬 기러기 아빠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국은 교육에 맹목적인 나라다. 그 결과가 ‘기러기 아빠’라는 한국만의 독특하지만 씁쓸한 문화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사연들은 많지 않지만 연예인들은 대다수 해외로 자식들을 유학 보내고 있는 것을 종종 확인 가능하다. 사실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연예인들마저도 ‘기러기 아빠’의 그늘을 비추는 사연이 가끔 보도되는데, 일반인들은 어떨까. ‘기러기 아빠’들의 우울증은 30%를 웃돌고, 그들의 영양상태는 70%이상 위험한 수치를 기록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영어공부, 혹은 제2외국어를 위해 조기유학을 꿈꾸고 있다. 물론 몇 년 전이기는 하지만 주변의 지인들은 아이의 언어능력 향상을 위해 남편을 ‘기러기 아빠’로 희생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남편들도 원하는 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지인도 있었다. 남편들의 경우 3-6개월 가량은 행복해한다고 한다. 술을 늦게까지 마셔도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고, 자신의 자유로운 삶에 왈가왈부하는 가족이 잠시나마 휴식을 선물한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빈 집으로 퇴근하는 외로움, 불규칙한 생활, 어려워지는 경제적 상황, 어색해지는 자녀와의 관계 등이 현실로 닥치는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문화현상이 있지만 소통과 관련해 언어학습은 아이의 교육에 중요한 사안이긴 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최근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배우 윤여정의 수상소감을 보면 언어를 배우거나 가르쳐야겠다는 의욕이 마구 샘솟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돌아보자, 그녀는 결혼과 함께 남편 ‘조영남’을 따라 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돈을 벌지 않았고 오롯이 생계는 윤여정의 몫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윤여정이 벌어오는 돈을 모두 탕진했다고 하니, 그녀의 삶이 녹록치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혼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살기위해 연기를 했고, 어떤 역할도 마다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녀의 수상은 인고의 세월을 견딘 보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보자, 우리에겐 통역이라는 큰 무기가 있다. 2020년 역시 오스카 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감독 봉준호는 수상소감을 한국말로 했다. 그의 통역을 한 통역사가 주목받기도 했으니 언어가 중요한 것임도 분명하지만 사실, 두 수상자 모두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배우인 윤여정은 자신의 연기에, 감독인 봉준호는 영화를 연출하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결과다. 훌륭한 통역이 가능하게 된 우리나라의 역량이 어쩌면 수많은 ‘기러기 아빠’들의 희생이 일궈낸 결과일수도 있지만, 통역사 역시 언어의 소통이라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아닌가.

    몇 년 전, 영재발굴 프로그램에서 다루었던 아이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유학길에 올랐던 그 아이는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이 곳에서 쓰는 돈은 한국에 있는 자기 ‘아빠의 외로움에 대한 값’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감동적인 말일 것이다. 대부분 외국생활을 풍족하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생활은 형편 되는 사람만 하라는 말이냐, 서민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냐, 라는 논리가 나설 것 같은데, 논지는 이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로 귀결되지만 맹목적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과 결부되는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하는 것이 지켜보기에 힘든 것은 당연하다. 경쟁에도 뒤처지면 안 되고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기본 평균 이상은 해야 할 것 같고, 성실한 사람은 되어야 할 것 같고...원하는 바가 많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우선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즐기는 사람들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이라지 않던가.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면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설사 잘 안되더라도 네가 좋아했고 즐겼으니 충분히 잘했다고 다독일 수 있는 핑계도 될 수 있고 말이다.

  2007년 영화 <우아한 세계>를 보면 조직의 중간 보스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인 주인공이 고단한 생활 끝에 가족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결국 쓸쓸히 라면을 끓여먹는다. 가족과의 행복한 삶을 꿈꾸는 ‘기러기 아빠’의 초상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소통도 불가능한 관계 속에 외국에 가서 언어를 익혀온 들, 그 것이 과연 올바른 삶의 태도인가 싶다. 뚜렷한 목적 없이 언어는 필수이니까 라는 이 험난한 교육현실 속에 스스로의 잣대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면 ‘우아한 세계’를 꿈꾸는 비극적인 현실만 남을 것이다.

   아이가 지나친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않게 방향제시를 하는데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필자도 아이를 낳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귀동냥한 결론이지만 부모는 운전을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고 길잡이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한다. 곰도 물고기를 사냥하는 법을 가르치지 물고기를 사냥해서 가져다주지만은 않지 않던가.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을 통해 잘하는 것을 찾게 되면, 내가 언어를 잘 못해도 통역을 잘하는 누군가(기계가 될 수도 있는 시대다) 세상에 알려줄 기회가 마련될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위해 외국에 가야 한다면 아이도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필자도 한국에서 아이가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수없이 부딪히지만 먼저 나서서 아이를 외국으로 내몰지 않길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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