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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갈기 좋은날 Sep 26. 2021

이성과 감성, 그 간극에 대하여

- <이퀼리브리엄>의 역주행을 꿈꾸며


    최근 MBC<나혼자산다>(이후 '나혼산')가 지속적으로 도마위에 오른다. 최근에는 만화가 기안84의 왕따논란이 주목되었는데, 자신의 웹툰<복학왕>의 완결을 기념하기 위해 '나혼산'의 회원들을 초대했는데, MC전현무만 참석하는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코로나로 모이지 못했다는 회원들의 변명은 말 그대로 핑계가 되었고, 착찹한 표정의 기안84는 시청자들의 위로를 받게되었다. 그런데 이후 전현무의 집에서 모임이 이루어졌고, 회원들은 언제그랬냐는 듯이 코로나도 무시하고 모임에 참석을 한다. 이 모습이 여과없이 그대로 방송을 탔다. 시골의 탁 트인 장소에서 모이자고 할 땐 발걸음하지 않던 회원들이 실내인 전현무의 집에는 거리낌없이 모이는 것을 보고 '왕따논란'이 점화된 것이다. 기안84는 연재 당시에는 불성실함, 널뛰는 스토리, 개연성 없는 기괴한 연출 등으로 독자들에게 뭇매를 던 작가였다. 하지만 그의 대충사는 듯한 자유로움에서 사람들은 일종의 해방감도 느낀 것 같고, 그의 황당하지만 진솔한 삶에 대한 태도에 사람들은 감응했다. 더욱이 스스로 '나혼산'덕분에 죽지않고 살았다는 그의 진심은 시청자들에게 통했던 것 같다. 그런 그에게 '몰래카메라'를 가장한 '왕따'라는 잔인한 연출이라니....기안84는 자신이 왕따는 당하지 않고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고 일갈하며 논란을 일축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냉담한 시선은 거두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가 큰 돈을 버는 스타작가인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왕따'연출을 해도 된다는 권리는 제작진에게 부여되지 않았다.

   감정이 조금 앞서서 서론이 길어졌다.  글의 취지는 사람들이 인간성에 대해 점차 주목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갑질에 대한 분노와 양심의 부재는 지능이 떨어지는 것이라는 진단,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사람들이 사회를 혼란시킨다는 시선에서 감성적인 인간에 대한 긍정적 시선이 증가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오래전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인생에 각인된 영화 하나를 말하고 싶다.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은 2003년 개봉작이다. 미국에서는 2002년에 개봉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2003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영화로 우리에겐 배트맨으로 익숙한 '크리스찬 베일'이 주연을 맡았다. 이퀼리브리엄의 뜻은 어떤 체계가 외부 교류없이 평형상태를 유지하려는 상태를 뜻하는데, 즉 '평정'이다. 영화의 배경은 3차대전이 일어난 이후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여 범죄와 전쟁이 사라진 체제를 유지하는 사회 '리브리아'다. 크리스찬 베일은 일종의 경찰인데, '감정유발자'를 처단하여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엘리트 계층으로 그려진다. 뛰어난 무술을 겸비하고 있으며 자신은 감정이 없는데도 타인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또한 감정이 없어 살생에 죄책감따위는 있을리 만무하다. 영화는 이런 그가 감정을 느끼게 된 자신의 파트너를 처단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리브리아'에는 감정을 통제하는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이 있는데 이 약물을 통해 감정을 억제한다. 영화는 감정을 억제하는 사회를 전복시키는 주인공에게 자극을 준 모든 것들에 예술과 생명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을 연출한다. 불태워지는 모나리자로 시작되었지만, 예이츠의 시집, 향수, 무채색의 도시를 감싼 석양과 무지개의 빛, 벽 속에 감춰졌던 수많은 예술품들과 생명의 소중함을 자극시킨 강아지, 그가 감성적 인간으로 각성한 것을 확인사살하는 베토벤의 교향곡까지...다양한 감성에 대한 코드는 예술품으로 대체되어 영화를 감상하는 감상자들에게 끊임없이 메세지를 보낸다. 영화를 소비하고 있는 감상자들로서 우리도 충분히 감성적인 인간들이다.

    크리스찬 베일은 우리에게 배트맨으로 익숙하며, 그의 캐릭터에 따른 고무줄같은 몸매 관리 역시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연기는 여기서 한 번 더 평가되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감정이 없는 존 프레스턴의 변화를 섬세하지만 격정적으로 연기한다. 2003년 당시 '매트릭스는 잊어라'라는 홍보문구가 얼마나 이 영화의 본질을 잃게하는 안타까운 문구였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홍보를 하기 위해 매트릭스와 비견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한 것이겠지만, 매트릭스와는 다른 시선으로 접근해야 하는 영화다. 이성적인 사회가 감성을 지배하면 어떤 현실을 맞이할 것이며, 그 대상에는 예술가들이 '감정유발자'로 제1순위 숙청대상이었다. 과연 그 체제가 전쟁과 범죄를 성공적으로 막을 것인지 의문이다. 여전히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살생은 버젓이 자행되고, 권력자가 존재한다. 그들에 반하는 레지스탕스도 존재하고 그들이 '리브리아'의 전복을 꿈꾼다.

    감정을 삭제당한 인간들의 무미건조하지만 정돈된 사회에 대한 감정유발을 일으키는 감성적 인간에 대한 고찰이라는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는 영화로서 <이퀼리브리엄>은 다분히 철학적인 영화다. 그렇다고 어렵고 딱딱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일단 연기력도 검증된 미남배우 크리스찬 베일이 있으며 절제되었지만 액션도 충분하다. 예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봤던 사람들이라면 예술이 거세당한 사회의 일면을 확인할 수도 있다. 또한 짧게 그려지지만 주인공의 아이들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EXID의 <위아래>가 역주행하고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이 역주행한 것 처럼, <이퀼리브리엄>도 슬리슬쩍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되었으면 좋겠다. 일단 현재 넷플릭스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이미지 출처: https://tioom.tistory.com/478, <이퀼리브리엄>의 크리스천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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