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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갈기 좋은날 Sep 25. 2021

'이름'에 대한 사색

-  인생의 에필로그 '태명'

   아이를 가지면 '태명'을 짓는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소망이 담기고 태어난 이후의 바람도 담기고, 부모에게 오게 된  사연도 담기게 된다. 또는 웃픈 사연이 담기기도 한다. 오래 전 엄마들을 위한 강연에서 '태명'이야기를 공유할 일이 있었는데 태명이 '호떡'이라고 한 엄마가 있었다. 호떡이 먹고 싶다는 자신에게 남편이 호떡을 너무 안 사줘서 아이 태명을 호떡이라고 했다고 하는 사연이었다. 이처럼, '태명'에는 이야기가 담긴다. 

   이름이 가진 의미에 대해 전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 있는데 바로 김춘수(1922~)가 1952년 발표한 <꽃>이다. 존재의 본질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시로, 이름을 통해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고 싶다고 담고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뒤에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표현은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에 '이름'이 가진 본질적 가치를 '꽃'에 투영시킨다. 우스울수도 있지만 그저 하나의 세포로 엄마의 자궁에 착상했지만 엄마가 '태명'을 지어 그 작은 세포에 의미를 부여하자 아이는 엄마에게 '꽃(생명)'이 된 것이다. 

  이름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잘 담아낸 작품이 있는데 바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2017개봉)이다. 서로의 몸이 뒤바뀐다는 다소 식상한 설정일 수 있는 도입부와는 달리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이름'을 되뇌이는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너는 누구인지 묻고, 간절한 손 끝으로 던져지는 목소리는 '내 이름은...'이라고 외친다.  더욱이 모든 문명의 이기와 손에 적힌 글자마저도(잉크로 씌여있는) 모두 지워지는 순간에도 둘은 정신으로 이어져 있음이 의미있다. 주인공 '타키'는 무의식의 저편에 남겨져있는 '미츠하'의 마을을 그림으로 그려내기까지 한다. 만날일이 없었던 두 사람은 결국 만나야만 하는 사이가 되고 둘은 서로에게 "잊고 싶지 않은 사람, 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된다." '이름'은 존재의 본질이 된다. 

   속담에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름'에는 철학이 담긴다. '태명'으로 불리던 아이들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되면 출생신고가 되는데, '이름'이 지어지고 그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았으면 하는지에 대한 부모의 소망이 담긴다. 물론 여전히 항렬을 따지고 돌림자를 써야한다는 작명문화로 원하지 않는 이름을 지어주게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서양의 경우에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그들의 패밀리 네임이 대개 선조들 이름이나 직업 직명들을 쓰는 예가 많았다는 것이다. 즉 베이커(Baker ; 빵장수), 스미드(Smith ; 대장장이), 테일러(Tailor ; 재단사), 카펜터(Carpenter ; 목수), 밀러(Miller ; 물방앗간 제분업자)등 소박하지만 정겹다. 미국의 유명한 팝 가수 그룹 '카펜터스(The Carpenters)'가 있는데 남매그룹이었고, 그들의 그룹명이 그들 성을 그대로 따른 것을 보면 '이름'에 진심이었던 같다. 

  종종 TV프로그램에서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토크쇼'를 진행하고는 하는데 기상천외하고 기발한 이름들이 등장하고는 했다. '안테나', '고자임', '방석', '정벼슬', '탁트인'씨 등등 부모님이 어떤 생각으로 지으신거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신기한 이름도 많았다. 긴 문장형 이름도 있었는데, 그 기원이 혹시나 아이가 오래살았으면 하는 소망으로 지었던 이름,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박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라고 전래동화에도 등장하는 이름이 있는데, 거기서 왔나 싶다. 그러나 결국 아이는 너무 긴 이름때문에 명을 달리하였다는 비극의 풍자다. 

     최근 '의리'의 대명사 배우 '김보성'씨가 본인의 이름을 '허석김보성'으로 개명했는데, 원래 본명이 '허석'이었고 '김보성'이라는 예명에 대한 예우와 본명에 대한 예우를 동시에 하기위해 개명했다는 인터뷰를 했다. 정말 '의리'의 대명사 답다. '이름'에도 의리를 지켰다.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만큼 사실 부모의 '이름'도 중요한데 우리는 아이가 태어난 뒤로 누군가의 '엄마','아빠'로 살아가게 된다. '아빠'는 사회적 역할에 따른 다른 이름을 부여받기도 하는데 '엄마'는 사실 자신의 일을 그만두게 되면 'oo엄마'로 주로 살아게 된다. 물론 아이이름을 붙여 '누구 엄마'가 되는 것이 의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 명칭 그대로 의미를 갖게되는 것이니 말이다. 여자에게 '누구엄마'로 불리는 것은 '엄마'로서 제2의 인생을 선물받은 것이다. 이왕이면...엄마가 된 것에도 의미를 가지고 또 자신의 본 '이름'도 잊지않으면서 스스로를 다독였으면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부모님의 세상의 꽃이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의 '엄마,아빠'로 아이의 세상의 꽃이 되었다. 아이는 다시 우리에게 '태명'부터 시작해 우리의 세상에 '꽃'이 되어주었다. '이름'은 우리 인생의 궤적을 그려주는 지표가 된다.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고, '직함'으로 불리기도 하고, 죄를 지으면 '번호'로 불리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아호'를 짓거나 스승으로부터 선물받아 자신의 예술관을 관철하기도 한다하니, 여러의미로 '태명'은 인생의 에필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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