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섯의 엄마는 쉬지 않고 아직도 일을 하신다. 2021년 쓰지 못하고 남아 있던 연차를 막내딸 집에서 보냈다. 엄마는 딸 집에 온 것만으로도 여행을 온 것처럼 좋아하셨다. 조카도 함께 와서 아이들끼리 추억 만들기, 나는 엄마와 추억 만들기를 했다.
마침 동짓날이라 팥죽을 만들고, 사위를 준다며 생강절임과 생강차를 만들었다. 급하게 오시느라 집에 미리 만들어둔청국장을 못 가져왔다고못내 아쉬워하셨다. 2박 3일 내내 청국장 이야기를 하셨다. 어릴 때는 청국장 냄새가 정말 싫었다. 집에서 직접 콩을 삶고 며칠을 아랫목에 두었다가 청국장을 만들었는데 숙성되는 그 기간 동안 냄새와 함께여야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담?"
발꼬랑 내 나는 그 냄새 입에 쓰고 맵기만 한 생강 텁텁한 팥죽 그런데 이제 그 청국장 냄새가 구수해지고, 맵고 쌉싸름한 생강 맛에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고,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어야 한다면서 팥죽을 만들었다.
"이 맛있는 걸 그땐 왜 몰랐지?"
삶은 콩을 오래도록 숙성시켜 콩 본연의 맛이 깊어지기를 기다리며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청국장
팥죽에 들어갈 새알을 직접 만들고 죽이 눌어붙지 않도록 젖고 젖고 또 저어서 만들어진 팥죽
생강을 얇게 잘라서 삶고 설탕과 함께 젖고 젖고 또 저어서 만들어진 생강절임
덤으로 만들어진 생강차
음식 만드는 동안 이불 텐트를 만들면서 노는 아이들
이 찰나의 순간이 감사이고 행복이다.
이렇게 글로 만나는 시간이 생기면서 순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선물 받은 것 같아서 감사하다.그 순간도 행복하고 감사했지만 이렇게 글로 적어나가면서 다시금 마음속에 차곡차곡 감사가 쌓인다.
나에게 글쓰기는 멈춤이다. 휙 지나쳐버렸을 순간이 이 고요한 시간에 선명한 기억으로 자리 잡아 하얀 종이 위를 채워나간다.
올해 아들이 선물해 준 "멈춤" 덕분에 나에게 새로운 눈이 생겼음이 기쁘다. 휴직을 결심하기까지, 나의 일을 멈추기까지 참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멈춤" 덕분에 글쓰기도, 독서도, 나도, 엄마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