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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전 Dec 30. 2021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책이 건네준 한마디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엄마들은 좋은 엄마의 자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만, 그 ‘최선'의 의미가 엄마가 아는 최선과 자녀가 원하는 최선이 다를 뿐이다.

술이 친구였던 아빠를 보고 자란 나는 술이 싫었다. 감정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그냥 내어놓게 만드는 술이 싫었다. 늘 맑은 정신, 바른 태도와 언행으로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으로 나를 키워나갔다. 이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삐뚤어지거나 흔들리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스스로 세워둔 최선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으니까.


자녀를 낳기 전까지 이 최선이 통했고 그것이 나를 이끌었다. 더불어 바르지 않은 것에 대한 정죄함이 함께 자랐다. 아들이 태어났고, 내가 선택한 “바른”이라는 최선이 아들을 “통제"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안돼, 그렇게 하는 것은 예의 없는 모습이야.”

  “안돼, 그렇게 하면 친구들이 싫어하잖아.”

사사건건 통제하기 시작하는 나를 그때는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아들이 음식을 삼키는 기본적인 것조차 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등교거부, 외출 거부를 하기에 이르렀다. 병원, 상담, 휴직...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매달렸다. 그렇게 지나온 1년, 그때 만난 책이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였다. 사랑한다면서 망치는 사람. 그 작가의 고백이 내 고백이 되었다. 나는 내 경험으로 얻은 최선을 아들에게 강요했다. 아들이 직접 경험하며 터득해야 할 최선을 내가 미리 통제해 버렸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녀와 남편과 일을 만나며, 나도 술을 빌어 조금은 느슨해진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경멸하던 술을 내가 직접 먹어보니 원망의 대상이었던 아빠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내 기억과 사실이 왜곡되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불행의 상징이었던 술, 그런데 사실과 직면해 보니, 자상하게 나를 챙겨준 아빠가 보였다. 그리고 무너지는 상황을 겪고 술에 의지했던 그 순간만을 내 기억 속 아빠의 전부인 양 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아빠는 불안을 술로 표현했고, 그때 아들은 불안을 음식 거부로 표현했고, 그때 나는 불안을 표현하지 못하고 꼭꼭 숨겨두었다. 숨기고 감추고 눌러두면 잊어버리고 없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표현했기에 도와줄 수 있었고, 회복되었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은 나는 병이 들었고, 정죄했고, 괴로웠다.

감추어진 불안, 숨기고 묻어두면 안 나타날 줄 알았는데 아빠에 대한 불안이 아들을 통해 나를 건드렸다. 하지만 이제 덮어두지 않고 글로 표현하며 내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니 이제야 내가 살 수 있게 되었다. 엄청 대단한 일인 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별거 아니었다. 아빠에 대한 불안이 나를 바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집착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들을 통제하며 바르게 인도하고자 했던 내 최선이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됨이 감사하다. 과거의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었음을 알고 고백하는 지금이, 좋은 엄마로 나아가는 첫걸음임을 표현하게 되어 감사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내 감정이다. 자녀, 부모님의 삶을 내가 일일이 통제할 수 없다. 다만, 그 상황을 해석하는 내 감정을 통제하며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그 감내의 과정 가운데 스스로 묻어두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글쓰기이다. 글로 적어나가면 나에게 너무 크게만 느꼈던 그 일이 조금씩 작아 보이기 시작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

라고 아파하는 그 누군가에게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꼭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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