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의 원인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옛날 한 양반이 있었다. 밭일을 마치고 양손에 쟁기와 삽을 잔뜩 든 채 소를 타고 지나가던 옆 동네 노비가 소에서 내려 양반에게 인사하려고 하니, 양반이 말한다. “거 짐도 많은데 번거롭게 내리지 말거라” 우물쭈물하던 노비가 소에 탄 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나리” 양반은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옆 동네 양반에게 전갈을 보낸다. “귀댁의 노비가 양반에게 예를 갖출 줄 모르니 무례함을 엄하게 꾸짖어 응당한 벌을 내리시오. 양반이 그 도리로 관용을 베풀더라도, 예를 갖추는 것은 그 자의 도리가 아니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내 표정은 그야말로.. (? . ?).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지금의 시대와 그때의 시대가 다르겠지만. 말로만 듣던 “너의 도리, 나의 도리”였다. 이것, 정말 “도리” 맞는가?
가까운 사이에서 불통이 생기는 원인에 관해 내가 자주 드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예로 드는 이야기이니 조금은 극단적이다.
햄버거를 좋아하는 해미와 라면을 좋아하는 라미가 있다. 둘은 가까운 친구다. 해미와 라미는 종종 함께 밥을 먹는다. 해미는 몇 차례 라면을 좋아하는 라미를 위해 “오늘은 라면 먹을까?!“라고 제안한다. 라미는 요즘 햄버거에 맛을 들여 햄버거가 먹고 싶지만 해미가 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좋아!“라고 답했다. 하루는 해미가 요즘 너무 양보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오늘은 햄버거 먹자!“라고 제안한다. 라미는 서운하다. 여태까지 해미가 먹자는 대로 라면만 먹었는데 오늘도 제멋대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라미는 해미를 멀리한다. 해미는 자신을 피하는 라미를 보고 황당하다. 여태 라미가 원하는 대로 다 맞춰줬는데 왜 이러나 싶기 때문이다. 해미도 라미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의 기본은 각자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그것을 토대로 중간점을 찾아나가는 데 있는 것 같다. 타인의 의사를 멋대로 예단하고 자신의 진의를 숨기면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될 리 없다. 배려하는 마음을 앞세워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을 기회를 갖지 않는 것이 불통의 원인이다. 해미와 라미 이야기에서 원하는 걸 한 사람은 없고 배려한 사람만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앞선 양반의 도리는 도리가 맞는가? 위선(僞善) 아닌가? 겉으로 선의를 베풀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 거짓된 선. 말하는 사람은 체면 차리지 않고 명백하게 의사를 표하여 오해를 만들지 않고, 듣는 사람도 그 말을 곡해하지도 선해하지도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요즘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