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비 Mar 29. 2023

대환장 이사

8년 만의 이사

이사를 했다.
엄청 검색해 보고 반포장 이사를 하기로 결심했었다.
숨고에서 견적을 받고 계약금까지 보냈다.
하루 전에 짐 싸는 박스를 보내주신다고들 하던데 내가 예약한 사장님께서는 당일날 와서 짐을 다 싸고 나는 이사 간 집에서 정리만 하면 된다 해서 흔쾌히 덥썩 예약한 것이었다.
트럭 두대, 사장님과 동업자가 오시는데 50만 원.

원룸 이사라고 했는데....
집 곳곳을 사진 찍어 보내드리자 사장님 당황잼.
짐이 많아서 트럭 두대가 부족할 수도 있다고 한다.
대신 이사 가는 곳이 가까우니 정 안되면 트럭 한 대가 한번 더 움직이고 10만 원을 추가로 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코로나에 걸렸고.....
포장이사 견적을 받아보니 30만 원 차이밖에(?) 안나는 것이다.
몸이 피곤하니.. 포장이사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그냥 후회만 하다가 이삿날이 다가왔다.

실은 스스로 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랬다.

풀옵션 집이 아니어서 큰 가구가 있을 뿐이지 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적은 양의 4계절 옷을 보고 놀라곤 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나는 "우주 최강 테트리스신"이었다.

짐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없었던 줄 알았던 짐이 아니고 그냥 어디 있는지 다 아는 것들이었는데 이 녀석들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사장님도 울고 함께 오신 동업자님도 울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었다. 겨우겨우 트럭 두대에 짐이 들어갔다.
희대의 사기를 당한(;;;;) 사장님은 이건 원룸의 짐이 아니라고 하셨고(맞습니다 ㅠㅠ), 동업자님은 절대~ 절대~ 짐을 더 늘리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은 매우 동감입니다. 줄이며 살게요 ㅠㅠ)
그럼에도 내내 유쾌하고 친절하셔서 어쩐지 더 미안하고 감사했던 나의 이사.

금요일 밤,

엄마, 동생과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짐을 옮겼음에도 어마어마했던 나의 살림살이들

집에서 이삿짐이 올 때까지 오래오래 기다리던 동생.
그리고 밖에서 오래도록 떨었던 나.
9시에 시작한 이사가 끝난 시각이 6시였다.

나만큼이나 기막힌 테트리스 실력을 가진 사장님 두 분이 트럭 두대에 꾸역꾸역 짐을 실어 트럭이 한번 더 움직일 일은 없었지만 이 많은 짐을 옮기신다고 고생하신 사장님 두 분께 십만 원을 더 드렸다.

포장이사를 불렀어야 했다.
짐이 이렇게 많은 줄 알았더라면.....
어휴...

엄마와 동생과 주방의 짐만 먼저 정리했다.
9시에 늦은 저녁을 먹고 엄마와 동생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새벽 3시까지 짐을 정리했다.
엄마는 살면서 천천히 정리하라고 몇 번을 얘기했다(딸 성격을 매우 잘 파악하고 계심)
하지만 난.... 이런 꼴로는 못 산다.

그래서 3시까지 다람쥐처럼 바지런히 움직이며 짐을 정리했고 샤워한 후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다.
갬동이다.
어쩐지 인생 성공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되게 단순한 1인���)

다음날 아침, 예상했던 대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떴다. 7시.
(커튼 구매가 시급합니다. 아니!! 또 뭘 사겠다굽쇼? ㅠㅠ)
다시 좀비처럼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또 짐을 정리했다.
아무 생각 없는 기계처럼 움직이고 또 움직여 오후 4시쯤 대충 정리를 마쳤다.

대학 때부터 이고 지고 다니던 전공서적을 싹 버렸다. 무슨 미련이 남아 그리 끌고 다녔을까. 책을 호로록 넘기며 열심히 살았던 흔적을 마음에 담았다
안뇽~

버릴 것이 얼마나 많던지 너무 죄스러웠다.
앞으로 절대 무언가를 쉽게 사지 말아야지.
누가 준다고 덥썩 받지도 말아야지.
사는 것도 버리는 것도 줄이고 가볍게 살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해 본다.

지구에게 너무너무 미안했던 대환장 이사.

정오가 되자 집이 엄청 더웠다.
정남향 한강뷰 아파트에 사는 오월댁한테 톡을 보냈다.
- 앞에 거칠 것 없는 남향집은 원래 이렇게 더워? ㅠㅠ
- 응.. 여름에 죽... 어..
오월댁의 조언과 이사 가며 같은 말을 해준 세입자 분의 조언을 받들어 예쁜 샤랄라 커튼 말고 칙칙하고 못생긴 암막커튼을 사야겠다고 몇 번을 곱씹는다.

저 멀리 나의 엄빠산인 대모산과 구룡산도 보인다.
이 집과 나는 운명의 데스티니. 결국 이 집에서 한 번은 살게 될 운명이었던 것 같다.


산쟁이에게 산이 보이는 집은 매 순간 떨린다.
심장병 주의! ㅋ

✔️ 원룸 반포장 이사 : 1.2톤 트럭 + 1톤 트럭, 사장님 두 분 오셔서 60만 ➡️ 사장님 두 분 다 엄~~ 청 친절하셔서 누군가 반포장 이사를 하겠다고 하면 추천해주고 싶다. 원룸인 듯 원룸 아닌  원룸 같은 이사, 어쩐지 우주 대사기극 같은 이사였음에도 두 분이 내내 유쾌하게 이사를 진행해 주셨.두 분 모두 사업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 이사 나가는 집 엘리베이터 사용료 2만 원(경비아저씨가 만원 깎아주심. 데헷)

✔️ 이사 오는 집 엘리베이터 사용료 7만 원

✔️ 이사를 한다는 것은 그냥.. 넋 놓고 돈을 써야 하는 일이다.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모든 순간순간이 돈이다. 생각하고 기록하며 쓰다 보면 손이 떨리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팡팡 써야 한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작가의 이전글 내귀내듣 뒷담화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