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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l 09. 2024

하자와의 전쟁

무릎이 닳고, 눈이 아릴 때까지

투룸과 원룸 두 집의 인테리어 공사를 한 번에 진행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끝났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1년의 AS기간.

나는 시간만 나면 바닥을 기어 다니며 바닥공사가 잘못된 데가 없는지 찾았고 

눈을 부릅뜨며 벽지를 쳐다보았으며 싱크대, 붙박이장, 신발장 등을 손으로 쓸고 눈으로 훑었다


하지만 하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는 개뿔.

훑어볼 때마다, 쓸어 볼 때마다 하자가 발견되었다.

그럼 담당했던 팀장님에게 연락을 하고 AS 일정이 잡혔다.

AS 해주시는 분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근로 자니까... 근무시간에 해야 하잖아

그래서 점심때마다 집으로 오거나 아니면 휴가를 내야 했다.


집이 넓어 보이라고 밝은 색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를 깔아야 세가 잘 나간다고 해서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는 세상 불편한 녀석이었다.

우선 물로 벅벅 닦아주는 청소를 조금은 자제하라는 안내에 매일 못하게 되었고

밝은 바닥에 떨어진 먼지와 머리카락은 정말 기가 막히게 눈에 잘 띄어 살짝 도라이 결벽증이 있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공사하기 전에 늘 거래하는 중개사님께 조언을 구했을 때 바닥이 장판이면 집이 잘 안 나간다는 말에 장판을 하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을 누르고 내가 살 집이 아니다, 남이 살 집이다~라는 마음으로 한 거였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쭉 눌러살게 되어 마음 한켠에 여전히 장판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ㅠㅠㅠㅠ

관리하기 쉽고 저렴하고 마구 청소해도 되고, 고양이털이 끼지 않고 고양이가 토해도 쓱 닦아버리면 되는 장판.

마루는 마룻널 사이사이에 고양이 털이 끼고(이게 보이냐고? 가끔 보인다 ㅋㅋㅋ 근데 안 빠져서 돌아버릴 것 같다), 나이 들어 점점 토하는 게 잦아지는 우리 고양이가 토하면 정말 번개같이 달려가서 마룻널 사이로 흘러들어 가기 전에 닦아내야 한다. 

토한 자리가 마룻널 사이면..... 이쑤시개와 바늘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 본다. 하지만 슬프다. 찝찝하다 ㅠㅠ

세 번째로 진행한 엄마의 빌라 인테리어는 바닥을 장판으로 했는데 요즘 장판이 이렇게 잘 나오는 줄 몰랐지.

딱히 마루에 대한 로망이 없고 가구를 자주 옮기고 교체하는 취미가 없다면 장판이 최고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장판이 딱이더라.

다음에 인테리어 하면 무조건 장판 할 거야!!!

세 번 하면서 학을 떼고 치를 떨었는데 다음 인테리어를 또 논 하다니.

그 입 닫으라!!!!!!

원룸 공사가 세입자 이사오기 일주일 전에 끝났어서 망정이지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그 집에도 가서 무릎을 꿇고 바닥을 기어 다니고, 벽지를 쓸고 훑으며 하자를 발견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아, 물론 일주일 동안 그 짓을 해서 하자를 꽤 발견했고 AS를 받을 후 세입자님께서 이사를 오셨다.

갓 수리 끝난 원룸-매우 깔끔해 보이지만 하자 꽤 있음 주의!! 저기를 걸레질 한 다음에 며칠을 기어다녔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수도 없이 AS를 받았다.

필름지는 아예 재시공을 다시 했고, 화장실 문은 처음에 잘못 시공한 것에 덧붙이고 또 덧붙였더니 문이 잘 안 닫히게 되었고 문을 여러 번 떼었다 붙이니 안 그래도 오래된 집이라 나사 결합 부분의 나무 상태가 썩 좋지 않았던지라 결국은 새 문으로 교체받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왔다 가셨으며, 나는 수도 없이 점심시간에 달리기를 하며 집을 드나들었고 휴가도 많이 썼다.


AS를 진행하는 동안 담당 분야가 다른 많은 분들이 왔다 가시는데, 비전문가인 내 눈으로 아무리 봐도 찾을 수 없는 부분, 혹은 알 수 없는 부분(이를 테면 이부분은 실리콘 시공이 되어야 하는데 안되어 있다 등등) 그분들이 찾아주고 가시기도 했다. 

-제가 얘기 했다고 하지 마시고 AS 요청하세요

라며 고마운 정보를 주시던 분들. 


초반에는 발견할 때마다 파르르르 떨며 담당 팀장님께 AS를 요청했으나 그 이후에는 꽤 많이 모아질 때까지 기다려 AS를 요청했다. 그래봤자 분야가 다르고 오시는 분들이 다르며 이 분들의 시간을 한 번에 맞추는 것이 어려워, 그리고 맞았다 하더라도 막상 왔더니 당일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꽤 있어 몇 번을 다시 오셨어야 했다. 그리하여 휴가의 횟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AS 보증기간인 1년이 끝날 때 너무 기뻤다.

기간이 주어지면 미친 듯이 열중하여 열심히 하지만 끝나면 놓아버린다.

어쩌겠어? 이제 찾아도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애써 찾지 말아야지. 흐린 눈으로 살아야지.


이제 1년 반이 지난 집.

연약한 마룻바닥에 무언가를 떨어뜨려 흠이 생겨도 그러려니 한다.

못 보던 패임을 발견하면 못 본 척한다.


AS 과정이 길고 지난하였으나 그럼에도 꽤나 잘 이루어진 편인 것 같다.

물론... 이러이러한 하자가 있다고 문자를 보내면 답이 바로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두 번 보내고, 그래도 답이 없으며 전화를 했다.

그럼 해주긴 해주던 팀장님.

바빠서 그랬단다.

그는 진짜 바빠 보이긴 했다.

같은 직장인으로 한편으론 이해가 가더라도 가끔은 성질이 나기도 했지만

해주겠다고 한 것은 다 해주었으니, 이만하면 괜찮았던 것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여튼 집 두 채의 바닥을 기어 다니고 벽을 쓸고 다니고 눈알을 데룩데룩 굴린 결과, 

난, 인테리어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취향이 딱히 있지 않으니 그냥 남이 깔끔하게 고쳐놓고 하자보수 기간도 끝난 집에 마음 편하게 들어가 살고 싶다.

견적 받고 상담하고 네고하느라 진을 빼고, 큰돈 들여 공사하고, 그 시간 동안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내며 일 년을 뾰족하게 살았다.

피곤하다.



+) 속칭 세주는 집 인테리어로 가장 기본 만 한 내가 이 정도인데 정말 멋들어지게 "올수리"를 하신 분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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