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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스 Jul 29. 2023

앞을 볼 수 없는 건 그녀인데,

그녀가 보고 싶은 사람은 나다.

 여자친구가 라섹을 했다.

 이번 주말은 데이트를 쉬어야 한다.


"그럼, 여자친구가 눈도 못 보고, 카톡도 못하고, 연락도 안 하는 거네? 야, 나라면 오늘 집에 안 들어가."


 유부남인 H과장이 파티션에 기대서 대단한 가르침을 주듯 말한다.


"이태원 가, 이태원. 홍대는 너무 영해. 알지? 위너는 10시쯤에 짝지어서 나오는 거야. 루저들이나 밤새고 앉아있는거라구."


 뒷자리의 J사원도 합류한다. 아마 농담들 일터다. 그러나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모니터로 눈을 돌린다.


"나는 정말 결혼 전이라면......"


 뒤통수에서 H과장의 아직 끝나지 않은 푸념이 이어진다. 총각 때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저런 말을 하는 H과장도 나름 가정적인 사람이다. 그게 아이러니다.




 오전에 수술을 받았을 것이고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 직장 비번인 그녀의 오빠가 차를 몰고 데리러 갔을 것이다. 많이 아플런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런지 그녀도 내 생각이 나고 이 순간 내가 보고 싶을 런지 궁금하다. 하지만 톡을 해볼 수도 없다. 그녀가 앞을 볼 수 없으므로 답장도 없을 것이다.


 공허함에 친구와 약속을 잡아본다. 퇴근하고 합정에서 뭐라도 먹으며 간만에 수다를 떨겠지. 우리 나이가 이렇게 되었으니 서로 만나는 사람 이야기도 할 테고 결혼 이야기도 나오겠지. 난 또 그녀를 떠올리겠지.


"우린 이제 여자친구가 아파야 볼 수 있는 거냐?"


 과거에 두 번이나 약속을 캔슬 낸 것은 본인이라는 걸 이미 잊은 듯한 친구 놈이 말한다. 아프긴 누가 아프다는 거냐. 더 나은 삶과 밝은 시야를 위해 진료받았을 뿐이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일 얘기, 사는 얘기, 재미난 얘기 좀 하다 두 남자들은 서로의 연인에 대해 묻는다.


"잘 만나고 있는 거지?"


"그치. 넌 지금 여자친구분이랑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언제냐."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없어. 이 사람이 좋고 잘 맞는 것과는 별개로 난 연인 간의 완전한 사랑을 믿진 않아. 그런 건 부모 자식 간에만 있는 것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여자친구와 결혼을 확신하는가. 한다면, 그 마음을 갖게 된 시점이 언제일까.


"어머니이~ 오빠가 제니랑 못 놀게 해요. 제니 힘들다고......"


 내 치와와 동생과 격하게 놀기에 말렸더니 어머니께 이르겠다고 귀가 시간까지 안 가고 버티다가 기어이 조르르 달려가서 조잘대던 그때일까.


"오빠, 바지 좀 추키면 안 돼요?"


 어머니에게 평생 듣던 말을 피 안 섞인 그녀에게 들었던 그때일까. 아마 일상 속에 많이 녹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길지 않지만 서로에게 스며든 농도는 짙어져 있다는 것을 그녀의 부재 속에 느껴본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그녀의 반가운 카톡이 울린다. 카톡을 봐도 되나. 최대한 눈을 쉬게 해야 하지 않나. 여러 생각이 들면서도 주인이 돌아온 강아지처럼 꼬리 흔들며 반긴다. 물론 이번주는 각자 시간을 보내야 하겠지만 그녀가 없을 때도 나는 이미 그녀와 있구나 하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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