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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횡 Oct 24. 2024

현대 미술과 무림고수

일단 글을 쓰기에 앞서 나는 미술 쪽에 전혀 조예가 없음을 밝힌다. 그쪽 방면으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느낀 점을 적는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시작하려 한다.


현대 미술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난해하다. 뭔지 잘 모르겠다. 이게 왜...?


아마 이런 생각들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이 글을 적기 전에 간단하게 현대 미술에 대해 검색해 보았을 때 나오는 반응을 보면, 내가 느끼는 것과 다른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현대 미술 전시회를 가서 작품들을 보다 보면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기도 하거니와, 몇몇 그림들은 보고 있으면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어쩌면 터무니없는 자신감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생각한 작품의 가격을 보고 놀라는 것으로 현대 미술 감상은 보통 마무리가 된다.


그래도 나름 여러 곳에서 하는 현재 미술 전시회를 다녔었는데 항상 위와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가 되어 이제 더 이상 현대 미술 전시는 가지 말까 하다가 한번 이해해 보기로 하였다. 어째서 저 작품이 고평가 되고 높은 가격이 책정되었는지 말이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우연히도 내가 가끔(그리고 꽤 자주) 읽는 무협지에서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무협지를 읽어 본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주 아주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보통 중국을 배경으로 이런저런 사람들이 나와서 칼싸움(다른 무기도 사용하지만 주로 칼을 쓴다.) 하는 이야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칼싸움하는 사람들을 평범한 사람들과 구분되게 무림인이라고 부르며, 이런 무림인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무림고수라 칭한다.


작중에서 어떤 등장인물이 매우 강한 무림고수라는 것을 알려주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강한 사람임을 나타내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딱 한 수(一手)를 보여 주는 것이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모든 사태를 정리한다던가 아니면 상대하는 사람이 그 단 한 번의 공격을 절대 막을 수 없다고 느끼며 격차를 실감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고수의 한 수를 보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현대 미술이 생각났다. 왜 현대 미술 중에서도 그런 작품들이 있지 않은가? 딱 한 획만 긋는다던가 아니면 딱 점 하나만 찍은 그런 작품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무협지에서 이 한 수를 보고 놀라워하는 이유가 어쩌면 한 획을 그은, 한 점을 찍은 작품을 고평가 하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림고수의 한 수를 보고 놀라워하는 이유는 이렇다. 단 한 번의 휘두름이라도 그 안에 많은 것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 무림고수는 이 한 번의 휘두름을 위해 아주 긴 시간 동안 수십만 번 이상 칼을 휘두르고 찔렀을 것이다. 그런 수많은 노력들이 모여서 이제 단 한 수로 현재 상황을 뒤바꾸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능력을 얻은 것이다. 비슷하게 예술가의 한 획, 한 점 또한 같은 의미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예술가의 일생이 그 한 수에 녹아들어 자신의 세계를 표현했으리라.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내가 그냥 일반인이라는 것이다. 고수의 휘두름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비슷한 급의 고수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같은 무림인이어야 한다. 나 같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고수가 휘두르건 옆집 사는 누가 휘두르건 별 차이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옆에 다른 무림인들이 박수 쳐주니 같이 치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뭔지도 모르는 것을 보고 손뼉 치고 있을 수는 없다. 나도 당장 내 일 하러 가기 바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나이 많은 노고수가 자신의 일생을 녹여낸 한 수를 보여준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십 대를 갓 벗어난 20대 초반, 많아야 20대 중반의 사람이 나와서 그러고 있으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무언가를 쌓고 그것을 다시 녹여낼 만큼의 시간을 보냈는지 솔직히 좀 의심이 간다. 


당연히 이런 생각들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더 파고든다고 하여 알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해보기 전에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찜찜한 부분을 남겨 놓게 되었다. 아마 한동안은 이런 평행선을 달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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