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못 가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더위가 결국은 슬슬 물러나고 세상이 물드는 가을이 찾아왔다. 가을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곧 겨울이 찾아올 것 같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 날씨를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가을 날씨를 즐기는데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자전거 타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극단적인 느낌이 있을 수도 있으나 사실 몇 해 전부터 마음은 먹어왔었다. 언젠가 꼭 해봐야지 하고 말이다. 인천부터 시작해서 부산에서 끝나는 630km(실제로 타면 더 적을 수도 있다고 한다.) 정도 되는 꽤나 긴 거리.
가기로 마음먹고 날짜까지 잡은 건 좋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내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명을 해보자면 최근까지 중요한 일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었고, 그 일을 대충 마무리 짓고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으나 '적당히' 준비를 했다. 자전거 2,30분 정도 타는 수준으로 말이다. 그래서 사실은 떠나기 전부터 이미 실패가 어느 정도 예상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을 감행한 것은 작년에도 비슷한 시기에 이런 기회가 있었는데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며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게 너무 아까웠고 올해는 설령 얼마 못 가서 실패하더라도 시도는 해보자는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가기로 한 날 당일이 되어 아침 일찍 일어나 대충 밥을 먹고 7시쯤 차에 자전거를 싣고 국토종주의 인천 쪽 시작점인 청라로 향했다. 도착해서 자전거를 내리면서 어제 준비해 둔 물병을 안 가져온 것을 알게 되었으나 뭐 어쩌겠는가 일단 출발을 했다. 출발시간은 8시 10분.
시작은 좋았다. 아닌가? 진짜 딱 처음 몇 분만 좋았다. 한 십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이미 그때부터 다리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렇게 조금 더 지나니 그 정도의 아픔은 금방 익숙해졌다. 이후 도장을 찍기 위해 인증센터에 잠시 멈추는 것을 제외하고 3시간 정도 타자 느낌이 딱 왔다.
아 이거 못하겠다.
그게 아마 인천 지나서 서울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였을 것이다. 이미 이때부터 내가 대체 이걸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굳이 사서 고생을 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내가 그동안 자전거 타는 것을 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자전거가 주는 여유로움을 좋아했던 것이다. 걷는 것에 비해 빠른 속도가 주는 여유로움 말이다. 더해서 시간적 여유가 주는 정신적 여유로움까지.
그런데 국토종주의 자전거 타기는 이런 여유가 없다. 적어도 나한테는 없었다. 날씨는 좋고 주변으로 좋은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그걸 전혀 즐길 수 없었다. 몸이 힘드니 그런 게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심신에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어쩌면 이 고통스러움이 국토종주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고통을 겪고 이를 극복하면서 얻는 성취. 하지만 성취를 얻기에는 나는 너무 준비가 되지 않은 인간이었기에 나에게는 고통뿐이었다.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볼 시간적인 기회는 있었으나 수행할 능력이 없는 자의 최후였다.
아 그렇다고 해서 서울에서 끝내지는 않았다. 목표를 수정해서 서울만은 자전거로 벗어나보자 싶었기에 정말 꾹꾹 참으며(속으로 온갖 욕을 다하며) 페달을 밟았고, 서울을 지나 하남에 도착했을 때는 이왕 떠나온 거 하루는 밖에서 자고 들어갸야지 하고 숙소가 있는 양평까지 다시 페달을 밟아 양평인증센터 근처까지 갔다. 시간상으로는 다음 인증센터인 이포보까지 갈 수는 있었으나 이포보 주변에 숙소가 없었고 그럼 또 여주보 인증센터까지 가야 하는데 그렇게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양평에서 멈췄다.
그렇게 양평에 잡은 숙소에 들어가 씻고 침대 위에 누우니 한 가지 멍청한 고민이 내 머리에 들었다. 어디서 이 국토종주를 멈춰야 할 것인가? 사실은 그렇게 멍청한 고민은 아닌 것이 일단 양평에서 하루 잔 김에 여주까지는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문제가 여주까지 가면 자전거를 가지고 돌아오기 어렵다. 보통 국토종주를 하면, 성공했다고 가정 시 부산에서 고속버스 등에 자전거를 싣고 올라오는데 여주에서는 그게 안 됐다. 경강선으로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으나 내 자전거는 접히는 게 아니기에 이 자전거를 가지고 내가 사는 곳까지 가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더해서 내가 사는 곳에 가기 위해서는 공항철도를 타야 하는데 알아보니 주말만 자전거를 가지고 탈 수 있고 그마저도 미리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충주까지 가는 것이었다. 충주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까지 갈 수 있으니 그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몸이 잠시 편해지며 머리가 나빠져 생긴 고민이었다.
다음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자전거에 올라타자마자 극심한 안장통과 함께 머리가 맑아지며 여주까지만 가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사실 결국 여주까지 가서 인증센터 앞에 서서 조금만 더 가볼까 또 고민했는데, 다음 인증센터가 가까웠기에 거기까지만 갈까 하고 다시 자전거 탄 지 5분 만에 여주역으로 길안내 눌렀다. 그렇게 일단 자전거는 여주역에 남겨둔 채 몸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제 차로 자전거를 다시 가져오며 국토종주는 이렇게 끝났다.
어제 다녀와서 대체 이 국토종주 도전이 내게 뭘 남겼나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잃은 게 많다. 준비한다고 자전거 정비받고 보조배터리사고, 안장가방에 물통사고 안 써도 될 돈도 많이 쓰고 건강도 잃었다. 자전거 탔으니 건강해진 게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과도한 운동을 하게 되면 오히려 건강을 잃는다. 실제로 자전거를 타면서 실시간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리, 허리 손목, 어깨, 목 전부 아프다.
그나마 하나 얻은 게 있다면 참고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는 가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앞으로 조금이라도 간다. 그게 꼭 처음 목표로 했던 곳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많이 오지 않았던가.
다시 도전할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내년 봄에 한번 정도 있을 것도 같은데... 지금 몸이 편해서 머리가 나빠진 상황이라 정확한 판단이 안되고 있다. 일단 보류해 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