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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Apr 22. 2024

새로운 길, 좌파의 길

2024년 4월 여성작가의 책 | 좌파의 길 (낸시 프레이저)

책속의 말

자본은 시장적 관점에 따른 주장과는 달리, 등가물의 교환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시간 중 일부를 보상하지 않음으로써 확대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산업 노동을 저임금 불안정 서비스 일자리가 대체하자, 임금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생산 비용 아래로 떨어진다. 착취‘만’ 당하던 노동자가 이제는 수탈까지 당한다. 이러한 이중 조건은 과거에는 소수 집단의 몫이었지만 점차 일반화하고 있으며, 복지국가에 대한 공격을 통해 더욱 심각해진다. 사회임금이 하락하고 있는 와중에, 이를테면 이전에 공공 인프라와 사회복지 급여에 쓰이던 세수가 이제는 ‘시장’을 달래려는 목적에서 부채 상환과 ‘적자 감소’에 사용된다. 실질임금조차 곤두박질치자, 보육처럼 공공이 제공하던 서비스가 가족과 공동체에 떠넘겨진다. 말하자면 주로 불안정 임금노동에 고용 중인 여성에게 떠넘겨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적 재생산과 경제적 생산을 분리하여, 전자를 여성과 결부시키고 그 중요성과 가치가 눈에 잘 띄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사회는 바로 그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 의존해 공식 경제를 만들어낸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비판한 책은 몇 권 읽은 적 있다. 직접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관해 다루지 않더라도, 결론에서 현 사회의 많은 문제점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는 책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그쳤고, 나는 이거다 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책을 읽어본 적은 별로 없다. 아무래도 구조적인 변화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이다. 낸시 프레이저의 “좌파의 길”을 읽어보니 어째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이리도 어려웠는지 알 것 같다. 자본주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자본주의 안에서 해결하자고 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저자인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주의를 재인식하고 사회주의를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구조는 굉장히 체계적이다. 1장에서 자본주의를 재인식하며 자본주의가 단순한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제도화된 사회 질서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2장에서 4장까지 자본주의의 인종, 젠더, 생태적 모순을 지적한다. 5장에서는 자본주의의 정치적 모순으로 인해 민주주의에 어떻게 위기를 가져오는지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앞에 나왔던 논의를 정리하며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구조가 잘 짜인 책이라고 느낀 이유는 책의 전체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각 장의 전개 방식 또한 정형화되어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2장에서 4장까지는 비슷한 구조를 취하는데 자본주의가 어떻게 인종, 젠더, 생태적인 모순을 가졌는지 지적하며 16세기 중상주의부터 현재의 금융 자본주의까지 역사적인 체제를 돌아본다. 쉽지만은 않은 내용인데 틀을 짜 전개하니 복잡한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기에도 좋았고, 책의 전체적인 내용 역시 한눈에 들어왔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저자는 자본주의가 갖는 모순을 여러 측면에서 폭로한다. 자본주의는 착취와 수탈 없이는 작동할 수 없고, 재생산 활동이 필요하면서도 이를 무상처럼 취급한다. 특히 사회적 재생산과 경제적 재생산을 분리해 각각 여성, 남성과 결부시켜 여성을 종속시킨다. 자연에 의존하며 경제를 만들면서도 둘을 분할하고, 이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여 결국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한다. 자본주의 자체가 민주주의와 불화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공적 권력에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정치적인 것의 범위를 제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자체가 모순적이기 때문에 문제는 자본주의 안에서 해결할 수 없고, 사회주의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자본주의 안에서 살고 있고 여태 살아왔기 때문에 제3의 세계를 상상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안에서 수정하는 방안만 접했던 나는 이 책을 통해 아예 새로운 사회를 조금이나마 상상하게 되었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모든 문제를 치유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자본주의 안에서만 상상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에는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갖는 문제점이 너무도 많다. 이제는 자본주의가 거의 한계에 달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정말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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